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턴작가 Oct 18. 2022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을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리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특이한 생각에 종종 사로잡히곤 했다. '인간은 왜 태어났고, 왜 살아가며, 왜 죽음에 이를까? 죽음에 이르게 되면 결국 모든 것이 의미 없지 않나?' 대체 왜 그 어린 나이에 이런 철학자 뺨치는 조숙한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생각들은 나를 참 무력하게 만들었었다.


염세주의에 빠져있던 이 철없는 아이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문장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문장을 남긴 스피노자의 태도가 못 마땅했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서는 그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게 됐다. 나를 괴롭게 했던 저 질문들이 이젠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모두 자의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존재 자체의 이유에 대한 해답은 특별히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닌 이상 영원히 알 길이 없다. 또 지구와 그 안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무서울 정도로 방대한 우주 앞에서 티끌만도 못한 존재들이며, 과거, 현재, 미래의 인간들의 일생일대의 순간들은 그저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앤 원스>는 '한 가족의 화해 이야기'를 통해 찰나일 뿐인 우리의 인생에 대해, 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건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미국에서 코인 빨래방을 운영하는 중국인 여성 에블린은 하루하루 정신이 없다. 허구한 날 장난감 눈알이나 여기저기 붙이고 다니는 바보 같은 남편 웨이먼드, 제때제때 끼니를 챙겨드려야 하는 늙은 아버지, 문신을 하고, 남자 친구 대신에 여자 친구를 만나는 자신과 달라도 너무 다른 딸 조이까지, 그녀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현재 그녀의 인생은 마치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여러 개의 세탁기 같다. 


그녀는 모든 것이 싫증 난다. '고장 나면 당신이 책임져!'라며 짜증과 함께 세탁기에서 신발을 꺼내 던지고, 남편이 붙인 바보 같은 장난감 눈알도 바닥에 던져버린다. 더불어 그녀는 자신의 여자 친구를 할아버지에게 소개해주길 원하는 딸에게 상처 주는 말만 남길뿐이다. 에블린은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다. 


어쩌다 보니 다양한 멀티버스에서의 자신을 체험하게 된 에블린은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과 그때 헤어졌어야 했어! 얼마나 멋진 삶을 살 수 있었는데!'. 하지만 성공한 삶을 사는 세계로 다시 돌아갔을 때 그녀는 똑같이 성공한 그 바보 같던 웨이먼드를 마주하게 되고, 그가 말한다.

"다른 세계에서는 그냥 당신과 자그마한 세탁소 하나 차리고 세금이나 내면서 살고 싶어."


남편의 진심을 알게 된 에블린은 바보 같게만 느껴졌던 장난감 눈알을 자신의 이마에 붙이고, 온몸의 가시를 돋우는 딸을 향해 두 팔을 벌려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생명력 없는 칙칙한 돌덩어리에도 장난감 눈알을 붙이기만 하면 왠지 모르게 귀엽고 생명력 있어 보인다. 남편 웨이먼드가 시도 때도 없이 붙이고 다녔던 이 장난감 눈알은 방대하고 이해되지 않는 모순 투성인 세상 속에서 찰나를 살아가기 위한 그의 강인한 태도이자, 아내 에블린 대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장난감 눈알이었을까? 사실 감독은 장난감 눈알의 상징을 영화의 첫 장면부터 암시하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첫 장면은 에블린 가족이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 비치는 동그란 거울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하지만 잠시 뒤 화목한 가족의 모습은 사라지고 빈 거울만 남아있을 뿐이다. 가운데가 뻥 뚫려 비어있는 베이글처럼 말이다. 여기서 영화 후반부에서 에블린이 왜 장난감 눈알을 이마에 붙였는지 알 수 있다. 장난감 눈알은 에블린이 남편의 진심을 이해하고 나서 새로운 관점으로 인생을 볼 수 있게 하는 제3의 눈이다. 우리는 이 제3의 눈으로 베이글 속 구멍에 빠져 보지 못하고 지나쳤었던 사랑과 소중함들을 잘 찾아나가야 한다. 그 소중함들은, 모든 우주를 돌고 돌아도 언제나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들일 것이기에. 에블린은 제3의 눈을 통해 행복을 되찾았고, 영화는 결국 사라졌었던 그녀의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다시 비추며 끝이 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이라는 이 긍정적인 태도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말해준다. 그렇다고 무조건 낙천적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숨어버리고 싶을 때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후회라는 심연에 빠져 슬퍼만 하고 있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 삶은,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찰나의 순간이기에. 역경과 고난이 당신을 찾아와 늪에 빠뜨리려 할 때, 긍정적 태도를 무기 삼아 다시 한번 일어나서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을 영화는 꽤나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Nothing matters."

어떠한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 문장이 참 인상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수많은 실패와 고난을 마주했을 때  '모든 것이 부질없어'가 아닌, '뭐 어때'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어렸던 나는 이제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문장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했고,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5/5


Copyright 2022. 인턴작가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블론드> 남은 것은 스타일과 공허함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