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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작가 Oct 02. 2022

<블론드> 남은 것은 스타일과 공허함뿐

<블론드 / Blonde> (2022) 리뷰

"우리는 모두 스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빛날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위의 두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마릴린 먼로.

그녀에 대해서는 한 시대를 풍미하던 섹스 심벌이었고, 케네디 형제와 스캔들이 있었으며,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정도의 파편적인 정보들만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의 본명이 '노마 진'이었다는 것도 <블론드>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렇듯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녀가 현재까지도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모습을 보면 당시엔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카메라 앞에서 항상 웃는 모습으로 '우리는 모두 스타이며 빛날 자격이 있다.'라고 말하던 그녀가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그녀의 고백은 카메라와 대중들 앞에서의 마릴린 먼로의 삶과 노마 진으로서의 삶의 간극이 얼마나 깊었는지 조심스레 짐작하게 해 준다.


<블론드>는 먼로와 노마 진 사이의 깊은 간극을 잔인하게 파고든다. <블론드>의 감독 앤드류 도미닉은 그녀의 이중적이었던 삶을 바탕으로 이 깊은 간극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먼로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일단 필자는 감독이 먼로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도저히 잡히지 않는다. 보통 실존 인물들에 관한 작품들은 그들이 겪었던 고난과 함께 쟁취한 승리도 함께 다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블론드>에서 '승리'는 없다. 당대 먼로의 말도 안 되는 인기를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먼로는 자신이 대중들에게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로만 기억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기에 진정한 승리라고 보긴 어렵다.

<블론드>는 허구를 포함하여 시작부터 끝까지 먼로가 당했던 부조리들로 가득 차있다. 그녀가 한 인간으로서 얻은 승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품고 있던 그녀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결말에 이르러서는 산산조각 난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이 해석한 먼로의 삶은 기구하다 못해 잔혹하고 거북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남은 감정은 찝찝함과 우울감뿐이었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은 <블론드>의 먼로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부친 콤플렉스를 가졌으며, 멍청하고 몸을 함부로 다루는 백인 금발 여성? 먼로를 섹스 심벌로만 여기던 당시 할리우드 세태에 대한 비판? 여전히 모르겠다.


<블론드>는 올해 개봉한 실존 인물을 다룬 또 다른 영화 <엘비스>와 굉장히 비교되는 작품이다. 엘비스의 삶 또한 기구했다. 아버지는 전과자였고, 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또 자신이 믿고 따르던 매니저에게 몇 번이고 뒤통수를 맞았으며, 끝내 약물 중독에 빠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엘비스>는 음악에 대한 그의 천재적인 재능과 몸을 사리지 않는 팬들의 대한 사랑을 스크린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감독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로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완성도 높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기 영화라고 한다면 그다지 나이스 한 작품은 아닐 것이다. 결국 <블론드>가 과거 할리우드의 아이콘이었던 마릴린 먼로를 소재로 남긴 것은 스타일과 공허함뿐이다. 저 먼 곳에서는 그녀가 행복했으면 한다.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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