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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Feb 01. 2024

나도 그들처럼

장기기증 희망 등록


점심시간

몇 사람에게 생명을 기증하고 떠난 어린 소녀가 구내식당 tv에서 영정사진으로 웃고 있다.

엄마가 울음을 참으며 담담하게 인터뷰한다.

고등어 가시가 식도를 찌르며 내려간다.

면목 없이 보고 있다가 마지막 남은 밥 한 숟가락은  

끝내 삼키지 못했다.


오늘 피붙이를 제외한 일면식도 없는 남을  위해서 목적 없이 인정을 베푼 적이 있었나, 없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물던 흔적 남기지 않으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살았다. 언듯 보면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안다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오후 내 우울했다가 새로 산 담배 한 갑을 통째로 버렸다.

그날밤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검색다.

그날밤엔 소나기가 내렸다.



금연할 결심


건강하 죽는 것도 기증자의 의무다.

사후에 늑골이 열리고 오장육부가 드러났을 때 쪽팔리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담배는 끊어야 한다. 금연센터에서 얻어온 여러 가지 금연 보조제는 아무 소용없었. 나만 그런가

그냥 참았으며 지금도 참고 있다.

참는 한계가 오면 시민 체육공원 400m 트랙 쉬지 않고 달렸다. 심장이 부풀고 헛구역질이 날 때면, 풀코스를 완주한 초보 마라토너처럼 온기 없는 벤치에 누워 한참 동 거친 호흡을 했다.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감사했다. 이렇게라도 견디는 내 인내심에 감사한다. 늘 낮은 곳에서 버텨주는 운동화에 감사한다. 생각해 보니 감사한 일들이 운동장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 많다.


오늘이 금연 150일째 되는 날. 등록을 해야겠다. 음식점 키오스크도 인정머리 없어 꼴 보기 싫은데, 장기기증까지 인터넷으로 신청하기엔 서운해서 마을버스 6번을 타고 보건소로 간다.

보건소까지 열다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한 명의 승객도 타지 않았다. 이러다간 6번 노선이 폐지될 거라고 운전기사가 룸 미러에 눈을 맞추고 큰소리로 말했. 맞는 말이라고 웃어준다. 

모든 것이 정치인들 잘못이라고 또 한 번 룸 미러가 말했다. 난 침묵한다.


가엾은 보건소, 코로나 때 하얀 천막이 줄 서있던 주차장은 제 기능을 하고, 아비규환에 시달렸을 키 작은 단풍나무는 빈가지로 흔들리며 겨울을 지나고 있다. 그 아래 벤치에선 노부부가 장갑 낀 손을 잡고 오후의 햇볕을 쬐고 있는 글이 파마를 한 할머니의 마스크에 뽀로로가 인쇄돼 있다. 필시 손주의 마스크다. 간신히 입만 가렸다.


' 죽거든 내 몸은 마음대로 하시오. 가능하다면 뼈한마디 피부 한 조각 남기지 말고 모두 가져가시오. 혹시 내 영혼까지 필요하다면 집사람에게 별도의 허락을 받으시오'

랑 한 장의 장기기증 신청서에 서명을 했다.


보건소 들어올 때 봤던 노부부는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서 휴대폰이 들려주는 트로트를 듣고 있다.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주현미의 짝사랑이다.

할머니가 나지막이 따라 부른다.

'쳐다보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쳐다보는? 나도 잠시 헷갈렸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보건소 화단의 얼었던 흙이 녹아 아지랑이로 올라간. 나른한 사랑의 계절이 오고 있다.



새해 소망


부디 나이 들어 온몸의 조직이 시들기 전에 그대에게 닿을  있기를.

그리하여 그대가 서있을 건조한 모래밭에 물기 머금은 선인장 하나로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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