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잠시 머물던 흔적 남기지 않으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살았다.언듯 보면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보이지만 나는 안다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오후 내 우울했다가 새로 산 담배 한 갑을 통째로 버렸다.
그날밤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검색했다.
그날밤엔 소나기가 내렸다.
금연할 결심
건강하게죽는 것도 기증자의 의무다.
사후에 늑골이 열리고 오장육부가 드러났을 때 쪽팔리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담배는 끊어야 한다. 금연센터에서 얻어온 여러 가지 금연 보조제는아무 소용없었다.나만 그런가
그냥참았으며 지금도참고 있다.
참는데한계가 오면시민체육공원 400m 트랙을 쉬지 않고 달렸다.심장이 부풀고 헛구역질이 날 때면,풀코스를 완주한 초보 마라토너처럼 온기 없는벤치에 누워 한참 동안거친 호흡을 했다.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감사했다.이렇게라도 견디는 내 인내심에 감사한다.늘 낮은 곳에서 버텨주는 운동화에 감사한다.생각해 보니 감사한 일들이 운동장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 많다.
오늘이 금연 150일째 되는 날.등록을 해야겠다.음식점키오스크도 인정머리 없어 꼴 보기 싫은데, 장기기증까지 인터넷으로 신청하기엔서운해서 마을버스 6번을 타고 보건소로 간다.
보건소까지열다섯 번의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한 명의 승객도 타지 않았다. 이러다간 6번 노선이폐지될 거라고운전기사가 룸 미러에 눈을 맞추고 큰소리로 말했다.맞는 말이라고 웃어준다.
모든 것이 정치인들 잘못이라고 또 한 번 룸 미러가 말했다. 난 침묵한다.
가엾은 보건소, 코로나 때하얀 천막이 줄 서있던주차장은제 기능을 하고, 아비규환에 시달렸을 키 작은 단풍나무는 빈가지로 흔들리며 겨울을 지나고 있다.그 아래 벤치에선 노부부가 장갑 낀 손을 잡고오후의 햇볕을 쬐고있는데뽀글이 파마를 한 할머니의 마스크에 뽀로로가 인쇄돼 있다. 필시 손주의마스크다. 간신히 입만 가렸다.
'나 죽거든 내 몸은 마음대로 하시오. 가능하다면 뼈한마디 피부 한 조각 남기지 말고 모두 가져가시오.혹시 내 영혼까지 필요하다면집사람에게별도의 허락을 받으시오'
달랑 한 장의 장기기증 신청서에 서명을 했다.
보건소 들어올 때 봤던 노부부는똑같은 모습으로 앉아서 휴대폰이 들려주는 트로트를 듣고 있다.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주현미의 짝사랑이다.
할머니가 나지막이 따라 부른다.
'쳐다보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쳐다보는? 나도 잠시 헷갈렸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보건소 화단의 얼었던 흙이 녹아 아지랑이로 올라간다. 나른한사랑의 계절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