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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Mar 28. 2024

막장으로 가는 길

그 길에도 꽃은 피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놓은 밥그릇 하나가 온기를 잃어간다. 혹시 춘천옥에 막걸리 먹으러 갔을까? 말하려다 엄마 눈치만 살폈다. 춘천옥 아줌마와 엄마가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춘천옥 아줌마에게 예쁜 브로치를 사준 게 이유였다.


엄마와 성황당 고개까지 아버지 마중을 나갔다. 언제나 바람뿐인 성황당은 막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출근 때마다 광부들은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빌면서 반쯤 죽은 고목나무 밑에 잘생긴 돌 하나씩 올려놓았다. 더러는 이곳에서 하나님과 부처님보다 더 끗발 좋은 처녀 무당이 미친 듯이 높이 뛰면서 굿도 했었다. 굿할 때는 광산 어른들에게 반말을 찍찍해도 모두들 두 손을 싹싹 빌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봄바람에 성황당 새끼줄에 매달렸던 오색의 천들이 귀신처럼 펄럭거린다.



엄마는 달리기 선수


춥다, 흐르는 콧물을 훌쩍 빨아먹었다.

모든 꽃들이 핀다는 춘삼월이지만 광산이 워낙 높은 곳에 자리해 있어서 응달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다. 엄마는 입고 있던 스웨터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나에겐 보자기를 말아서 목에 둘러준다. 멀리 신작로에서 동발을 실은 제무시가 먹구름 같은 먼지를 뒤에 달고 털털거리며 올라온다. 그 뒤엔 어김없이 몇 명의 아이들이 검푸른 매연을 먹으며 따라다닌다. 신작로 옆 지천으로 핀 봄꽃들의 향기보다 트럭 배기구에서 나오는 매캐한 도시 냄새가 더 좋았다. 영식네 삼촌이 운전하는 제무시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갱이 무너져 세 명이 갇혀있다고 한다. 설마 아버지가 아니기대했지만 그중에 한 명이 아버지라고 말했다.


성황당 돌무더기에 피어있던 진달래를 따먹다가 엄마와 신작로를 뛰어 내려갔다. 뛸 때마다 시커먼 탄가루가 풀풀 날렸다. 엄마의 고무신이 벗겨졌다. 작년 가을운동회를 기억한다. 엄마 손을 잡고 달려서 공책 두권 받았을 때보다 더 빨리 달렸다. 뒤에서 아무리 엄마를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유리구슬이 달그락거리다 두 개가 떨어졌지만 줍지 않았다. 숨차서 주저앉았을 때 노랗게 질린 태양이 싸리제 공동묘지 너머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불안한 아침


갱도 입구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자주 볼 수 없었던 광업소 소장이 바쁜 척 뛰어다닌다. 밤을 새워 구조 작업을 했지만 새벽이 올 때까지 막장에 매몰된 광부들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교회 다니던 작은누나가 성경 책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동생은 울다가 넋이 나간 엄마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다. 아저씨들이 춥다고 피워놓은 드럼통의 장작불도 사그라질 때쯤, 성황당 고목 위로 해가 뜨고 쌓아놓은 동발에 앉아있는 엄마의 눈동자에서 봄 햇살이 반짝거렸다.


깔아놓은 가마니에서 깜박 졸다가 꿈을 꾸었다.

지난겨울 아버지와 가재 잡아서 구워 먹던 맛있는 꿈을 꾸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 갇혀있던 광부들이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들것에 실려 나온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해를 보면 실명한다는 이유로 눈을 가렸다.  모습에 엄마는 또 한 번 실신하고 말았다.

세 명 중에 누가 아버지인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를 크게 불렀다. 아버지가 눈에 가렸던 수건을 치우고 손을 내민다. 아버지의 탄가루 묻은 까만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아버지가 까만 손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까만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와 영자네 아버지는 동발에 깔려 다리는 다쳤지만 기적처럼 살았고, 똥개도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광산으로 돈 벌러 온 서울 아저씨는 끝내 죽고 말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바람난 마누라를 찾으러 전국을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서울 아저씨의 가족은 없었지만 광산 어른들은 예쁜 꽃상여를 만들어 사택을 한 바퀴 돌고는 신작로를 따라 싸리제 공동묘지로 데려갔다. 올해는 공동묘지에 할미꽃이 더 많이 필 것이다. 무덤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이상하게 할미꽃도 덩달아 무더기로 피어났었다. 한름밤 도깨비 불도 하나 더 늘겠다.


진달래가 필 무렵에 다친 아버지는 학교 화단의 해바라기씨가 여물고 우체국 뒷마당의 대추가 빨갛게 익을 때쯤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날 밤 두부에 막걸리를 마시며 이젠 막장으로 들어가는 게 무섭다고 엄마에게 술주정을 한다. 엄마는 찢어진 아버지의 작업복을 꿰매면서 말없이 울기만 했다.



또다시 일상


다음날부터 아버지는 세상의 끝, 막장으로 출근을 했다. 엄마가 싸준 멸치볶음과 신 김치 도시락을 들고 성황당고개를 넘어갔다. 성황당 돌무더기에 짱돌 하나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나간 자리에 보라색 코스모스가 힘없이 흔들렸다.


작은 누나가 육성회비 달라고 한다.

엄마가 이번 달 노임 받으면 준다고 누나를 달랜다. 나는 딱총 사달라고 졸랐다가 호랭이가 물어갈 놈이라는 친숙한 욕만 먹었다. 동생은 도시락 반찬투정하더니 등짝을 한 대 맞았다. 사택 어느 집이든 아침마다 보는 시끄러운 풍경이다. 영식이가 밖에서 큰소리로 부른다.


오늘도 학교 가는 신작로에는 까만 광부의 하얀 자식들이 막장의 등불처럼, 투명한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 있었다.



갱: 석탄을 캐기 위해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간 굴.

막장: 굴 속 끝에 있는 작업장.

동발: 굴이무너 지지 않게 받치는 통나무기둥.

제무시: GMC, 미군들이 남기고 간 트럭으로 힘이 좋아 산판이나 광산에서 많이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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