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간 '미루기'를 생활화하며 느낀 것
아침 6시 51분.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떴다.
아침이다. 밝은 빛이 들어와 눈부시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태블릿 기기의 커버를 닫는다. “어제도 결국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들었구나.” 잠시 동안 자기 혐오에 빠져있을 찰나 알람 소리가 울린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몸을 일으킨다. 속이 더부룩하다. 늦은 시간에 먹은 저녁식사 때문일 테다. 동그랗게 부어오른 얼굴과 카드결제액을 보며 기분이 좋지 않지만, 이제와 후회해서 무엇하겠는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나 자신에 대한 미움과 함께… 내가 원한 아침은 이게 아닌데 말이다.
아침부터 알 수 없는 패배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하루의 일이 잘 풀릴 리 없다. 허겁지겁 출근해서 정신 없이 하루가 흘러가고 여유 없이 일을 해치우다 보면 퇴근 시간이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있고, 계획했던 운동을 가려다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집에 가는 길을 선택한다. 장을 봐서 건강한 식단으로 요리를 해먹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럴 에너지가 없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배달어플을 열어 김치찜을 주문한다. 입맛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내가 바라던 것보다 많은 양이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되니까 마음 편히 주문한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습관처럼 영상 콘텐츠를 튼다. 예능 콘텐츠일 때도 있고, 여러 번 봐서 무슨 대사가 나올 지도 외울 수 있는 드라마 시리즈일 때도 있다. 내가 해당 영상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즐거움이나 행복을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기계적으로 틀어두었을 뿐이고, 중요한 건 적막을 깬다는 것이다.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면 음식을 먹으며 영상을 본다. 분명 입맛이 없었는데 영상을 보며 먹다보니 한 통을 다 비웠다. 어느덧 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캔맥주 한 잔을 곁들인다면 잘 시간은 더더욱 빨리 다가온다.
어느덧 밤 11시 50분. 슬슬 씻고 나와서 잘 준비를 한다. 늦게, 많이 먹은 저녁 탓에 속이 더부룩하지만 지금 잠들지 않으면 내일 아침은 더 피곤할 것이다. 분명 오늘 퇴근 후에 운동도 가려고 했고, 책도 읽으려 했고, 직무관련 인강도 들으려 했지만… 결국 아무 실속도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차라리 푹 쉬기라도 했으면 다행인데 그것도 아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라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느라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해낸 것도 없이 자괴감을 안고 잠드는 밤이다.
위와 같은 일상을 몇 년 째 반복하다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푹 쉬는 것도, 계획한 것을 해내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에 대한 미움만 쌓여가는 악순환의 사이클을 깨야만 한다. 계획을 미룸으로써 스트레스를 받는 행위는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강연과 책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몇 년 간 같은 목표를 세우고는 달성하지 못한 채 허무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마저 잃고 ‘나는 이번에도 못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 스스로의 성취를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여겼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해져서.
‘미루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강연을 보고, 글들을 읽어가며 하나씩 실천해나가기 시작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조금만 방심하면 원점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가끔은 ‘미루기’와 관련된 강연을 보고 책을 읽는 것조차 말 그대로 ‘미루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연구하고 실천하는 그 과정 속에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나는 생각보다 약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수월해진다. 나에게 큰 실망을 할 필요도 없다. 나는 생각보다 약하고, 내 주변에는 나의 집중력이나 의지를 흐트리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이 ‘약함’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대단히 위대하고 훌륭한 위인들도 자신의 일을 미루곤 했다. (물론 끝끝내 해낸 후 성취했지만)
셋째, 각자에게는 저마다 맞는 방법이 있다. 특정한 방법으로 시행착오를 겪었다면 거기서 좌절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넷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미워할 필요가 없다. 나를 미워하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그저 내게 맞는 방법을 찾지 못했거나,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내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후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나의 작은 시행착오들을 풀어나가려 한다. 부디 오늘도 ‘미루기’를 하며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