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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티오브 Nov 19. 2023

대학병원 3곳의 중환자실을 경험하고 느낀 것


올 하반기, 뜻하지 않게 대학병원 3곳의 중환자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사실 대학병원에 건강검진 외에는 방문할 일이 크게 없었고, 중환자실을 방문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랬던 내가 올 하반기에 대학병원 3곳의 중환자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는데, 막상 중환자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더 막막했었다.

여러 병원을 경험하며 느낀 것은 병원마다 시스템이 참 다르다는 것.

각 병원이 그렇게 운영하는 것에는 분명 사유가 있을 것이고, 장단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는 상태가 위중한 상태인데다 보호자의 걱정이 클 수 밖에 없으니, 나는 중환자의 보호자 입장에서 느낌을 적어보고자 한다.

특정 병원을 비방하거나 알리기 위해서 아니라, 중환자의 보호자가 된 이들에게 혹시나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내 기억을 정리해두고 싶어서 작성하는 글. 



A대학병원 (지방) / 2023년 9월-10월


            처음으로 갔던 대학병원이다. 이 곳은 응급실부터 방문했었는데, 응급차 도착한 환자베드 근처에서서 다른 환자에 대해서 "저긴 지금 환자가 욕하고 난리났는데?", "왜저래" 라는 식의 의료진분들끼리의 대화가 너무 잘 들렸고, 환자 상태에 대해서 다급히 얘기했는데 "아 뭐 아직은 의식은 있으신 거잖아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셔서... 물론 충분히 본인들끼리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이고 워낙 환자들이 많으니 그분들에게는 일상이겠지만. 보호자로서 듣기 마음아프기도 했다. 해당일로부터 약 한 달 후 환자는 사망하셨으니... 당시 상황은 분명 응급상황은 맞았다. 응급실에서도 많은 시간 기다렸고(피검사 등 수치가 정확히 나와야 조치할 수 있을테니 대기가 불가피한 상황이긴 했다.), 의사분이 가끔 오셔서 질문을 하셨는데, "이 상태 되도록 가족들은 뭐했어요? 술은 왜 계속 마시게했어요?" 라는 식의 질문들도 받았다. 옆에서 아픈 상태로 이 질문들을 듣는 환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의료진 입장에서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응급실에 온 마당에 환자/보호자의 잘못을 질책해서 무엇하겠는가.


            이후 중환자실로 옮기셨는데, 담당 간호사님이 복용하던 약을 알려달라셔서 1층 로비로 왔다가 다시 중환자실로 가야하는 상황이 있었다. 정신이 너무 없는 상황이고 병원 지리도 익숙치 못해서, 중환자실로 옮기기 전에 있었던 응급실 앞에 계신 의사선생님께 여쭤보았는데 컴퓨터 화면만 보며 "어떤 중환자실인지 말하셔야 어딘지 알려드리든 말든 하죠" 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많이 바쁘셨겠지... 근데 처음 온 보호자가 중환자실 종류가 여러개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냥 "어느 중환자실이요?" or "환자 성함이 뭔데요?" 라고 말하는게 시간적으로도 더 절약되는 것 아닌가? 바로 옆에 계시던 다른 의사분께서 바로 일어나셔서 혹시 OOO 환자분 보호자신가요? 하시면서 친절히 길을 알려주셨다. A대학병원 전에도 지방병원 응급실에 있다가 이송되어 온 것인데, 응급실 분들은 너무 바쁘신 것은 알겠지만 정말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반응하시는 경우들이 있어서 아쉽기도 했다. 물론 정말 자세하게,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분들도 분명 있었다.


            이곳 중환자실은 평일 오전에 교수님 회진이 있었고, 이후 좀 대기하다가 약 10분간 환자면회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담당하셨던 주치의 교수님께서는 상황을 꼼꼼히 잘 설명해주시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도 늘 말씀해주셨다. 면회 시간에 가면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 분들께 이런저런 질문도 할 수 있었고, 대부분 친절하고 상황을 잘 알려주셨다. 회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면회라서 그런지 면회 시간에 복수천자를 하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오전에 주치의 교수님이 내린 지시(?)대로 바로 진행되는 것이었을테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면회시간에 복수천자를 하고 계시면 너무 아파보여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식이 많이 없어지셨기 때문에, 그 순간들이 너무 소중했어서 기억에 남는다.


            들어갈 때마다 특유의 소독제 냄새가 났는데, 지금도 그 냄새를 맡으면 너무 불안한 당시의 심정이 되살아날 것 같다. 비닐 가운과 비닐 장갑을 끼고 보호자 1명만 면회가 가능했고, 교대는 불가능했다. 여러 개의 침대들이 구역별로 놓여있는 방식이었고, 주변의 다른 중환자들의 연결된 여러 모니터들이 삑삑 울리는 소리와 형광등이 밝았기 때문에, 아마 환자들이 수면을 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곳은 보호자 동의서 연락이 주로 새벽에 왔다. 그래서 초반에는 언제 전화가 올 지 몰라서 계속 긴장 상태로 있으나 잠을 늘 설쳤다.


            십 수일이 지난 후 B대학병원으로 전원하게 되었다. 전원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언젠가 글로 다룰 일이 있으려나. 당일에 이동하기로 한 시간이 있었는데 계속 미뤄졌다. 수납을 해야하는데 수납 정산하는 것도 거의 30분이 걸렸다. 출발하기로 한 시간도 2시간 가까이 늦어졌다. 결국 한창 퇴근시간대에 응급차를 타고 서울 시내에 진입해야 했다.          



B대학병원 (서울) / 2023년 10월


            우여곡절 끝에 늦은 시간대에 B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성했다. 담당해주시는 간호사 분께서 나오셔서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여러 장의 종이를 주셨고, 중환자실에 대한 설명, 각종 동의서에 대한 서명을 안내해 주셨다. 초반에 받은 느낌은 자세한 설명들로 인해서 굉장히 전문적인 느낌을 받았고, 보호자로서 안심되었다.


            이 곳은 면회가 주 2회, 각 15분 씩만 가능했다. 그리고 매번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들어가기 전에는 비닐 가운, 비닐 장갑 등을 착용해야 했다. 이 곳은 여러 개의 침대가 구역별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픈된 1인실 형태로 되어 있었다. 전원 무렵부터 환자 의식이 많이 떨어지셔서 환자에겐 크게 와닿지 않았겠지만, 쉬거나 수면을 취하기에는 훨씬 좋은 환경이었다.           


            회진 같은 경우는 주치의 교수님이 워낙 바빠서 오시는 시간이 조금 늦어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주말이나 야간 등에도 자주 들러서 환자 상태를 살피시는 듯 했다. 환자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이고, 정말 좋은 의사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꼭 수술받고 싶었지만 환자의 몸 상태가 많이 악화되어 수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주치의 교수님을 못 뵈는 날에는 전공의께서 전화로 상황을 알려주셨다. 새벽에 전화오는 일은 없었다.


            환자는 이 곳에서 결국 사망 과정을 밟게 되었다. 임종면회를 하는데 간호사분께서 들어오셔서 15분이 거의 다 되었다고 하셨다. 사전에 임종면회도 15분이라는 사실은 안내받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니 뭐 2시간, 3시간 계속 하게 하실 수는 없잖아요?" 라고 하셔서 순간 울컥했다.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인데... 15분인 걸 사전 안내 받지 못하셨으면 2-3분 동안 마무리하시라고 그냥 말씀하셨어도 기분 상하진 않았을텐데... 결국 3분 정도 시간을 더 주시기는 했다.


            사망선고 후 응급차로 장례식장에 옮기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고자, 마침 원내 응급차가 이용가능하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1시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나를 포함한 상주들이 먼저 장례식장으로 출발하고나서도 나머지 가족들이 한참 기다렸다고 한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서 중환자실 벨을 눌렀더니 원내 응급차 기사님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고 있다는 둥 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더 기다려서 오신 분은 사설 구급차 기사님이었다. 애초에 왜 상황공유를 안해준 것인지... 이외에도 여러 가지 소통 오류로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이 여러 상처를 받았고, 이 정도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정도면... 여러가지 상황이 의심되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다.           



C대학병원 (서울) / 2023년 11월


            이 곳은 수술을 마친 환자(A,B대학병원과 다른 환자)가 약 1일 정도 머무른 곳이었다. 따라서 응급 중환자였던 위 환자와는 조금 상황이 다를 수 있다.          


            C대학병원은 지하철역에서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이동할 수 있고, 하나의 건물이라 이동 장소를 찾기도 쉬웠다. 안내하시는 분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직관적으로 이동하기 편리했다.           


            면회는 주 7일, 매일 30분 씩 가능했고 심지어 총 3명 이내의 범위에서 교대가 가능했다. 가운이나 장갑 등의 착용은 없었다. 구역별로 베드가 모여져있는 구간도 있고, 1인만 들어가있는 공간들도 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가 보호자(나)가 잘 귀가했는지 궁금하다며 전화하는 것도 허용해주셨다.           


            1일 정도 중환자실에 있다가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서 알맞은 호실도 골라주셨고... 무엇보다도... 중환자실 면회를 하고 병동을 옮긴다고 한지 2-30분만에 바로 병동을 옮길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빠른 이동 작업은 본 적이 없어서 정말 감사했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의 보호자로서 (어느 정도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보니) 가끔은 상처받는 경험들도 있었다. 굳이 보호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더라도 곱씹어보면 왜 그랬는지? 화가 나는 순간들도 많다. 


그러나 여러 병원들을 경험하면서, 정말 감사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나 또한 회사 생활을 하는 직장인으로서, 나는 과연 저분들만큼 열정적이고 전문적으로 일에 임하고 있을까 되돌아보기도 했다. 보호자들에게 최대한 편의를 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해주시는 의료진 분들도 많아서 가끔은 뭉클했다. 


A,B,C대학병원이 어디인지 밝힐 생각도 없고, 이 중 특정한 곳이 더 좋다,나쁘다 말할 생각도 없다. 매번 환자의 컨디션도 달랐으니 그로인한 차이도 있을테고, 병원마다 해당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도 있을테니... 하지만 중환자의 보호자는 가장 절실하지만, 정보는 없는 정보비대칭의 상황에 놓여 있다. 누구도 선제적으로 뭔가를 알려주지 않는다. 외롭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 상황에 놓인 중환자의 보호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이 글을 보는 중환자의 보호자가 있다면, 정말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고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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