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유년기와 성장기의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관리에 소홀했다기보다는 소홀히 하고 싶은 의도적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처음으로 냉혹한 상대평가 앞에서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사진에 알레르기가 생기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자격지심이었는지 나는 그런 나에게 애정을 갖기가 힘들었고 그런 나를 담은 사진을 보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나는 무엇이든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겼던 유년 시절의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성인이 된 나는 유년 시절의 나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남이 되고 말았다. 지금의 나는 사진 속 어린 나의 시선을 차마 마주할 수가 없다. 녀석을 마주하기에는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반세기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여전히 불모의 삶을 표류하고 있는 이곳이 내 인생의 종착지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탄식 속에서 더더욱 굳어져 갔다.
어렸을 적 나는 무슨 재미에서였는지 남들 앞에 나서서 웃기기를 즐겼다. 친인척이 모인 자리에서나 소풍 때는 학년의 모든 선생님과 학우들이 모인 자리에 붙들려 나가 ‘이기동 아저씨’ 흉내를 내 포복절도시키기 일쑤였다. 마지못해 끌려 나가기는 했어도 싫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 시기가 항시 행복했었는지는 모르겠다. 공작도 좋아해서 두꺼운 마분지나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을 모아 어른들이 깜짝 놀랄 만한 공작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림도 곧잘 그려서 친구들에게 만화 주인공들을 그려주기도 했고 학급에 환경미화가 있을 때면 거기에 동원되기도 했다. 사춘기 중학교 시절의 어느 날엔 내가 ‘베토벤’의 초상화를 스케치북에 베껴 그렸는데 그것을 본 미술 선생님이 날 미술부로 들어오라고 권유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음에도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공부에 전념하기에는 한심할 정도로 태만하고 안일했다. 학창 시절은 물론 군을 제대하고 나서도 한동안 이런 강박은 계속됐다. 공부해서 내가 뭐 대단한 누군가가 되려는 일념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잠재적으로 대단한 누구이기라도 한 양 어리석은 망상에 붙들려 있었다.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에서 주인공 ‘현우’는 어머니가 그의 유년 시절 사진을 별도의 작은 앨범에 챙기는 것이 못마땅하다. 어렸을 적 음악에 흠뻑 매료되어 근사한 음악가가 되겠다던 당찬 포부는 성인이 된 지금은 사라졌다. 오케스트라 단원 심사에 거듭 낙방하고 음악에 대한 자신의 고매하도록 순수한 열정은 냉담한 현실의 여건 앞에서 자취를 감춘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곤히 잠든 깊은 밤, 그리도 못마땅하게 여겼던 자신의 유년 시절이 담긴 앨범을 슬며시 들여다본다. 그렇게도 외면하고 싶었던 그 앨범을 들여다보며 그는 살며시 미소 짓는다. 꿈 많고 무엇이든 될 것 같았던 사진 속 어린 현우, 그가 기대했던 미래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우는 어떤 희망과 위로가 있었기에 어린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현우’가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어린 자신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사진 속 어린 나와 마주하길 바란다. 그런 기대를 조심스럽게 품게 된 것은 서서히 떠오른 글쓰기에 대한 바람을 내 인생의 종착지로 향하는 길로 정하고 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글쓰기에 대한 나의 바람이 절실하다고 하기에는 강렬하지 않다. 다만 지금의 나에겐 필연의 선택이기에 절실하다고 말할 뿐 그 절실함을 추진할 동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렴풋이 떠오른 나의 바람은 섣부른 것일까? 어쩌면 원하던 대로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녀석에게 다가서려는 나를 망설이게 한다.
녀석과 마주하기를 주저하는 내 모습에서 지난날의 번민과 질곡의 흔적을 엿보았을까? 녀석이 날 마주하려는 데에는 가고자 했던 종착지에 이른 나를 꼭 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송구한 마음을 뒤로하고 녀석에게 다가선다. 녀석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보며 말없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