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진 Nov 11. 2024

■ 아버지의 도시락

오전 일과가 수습되기가 무섭게 공판장 건물 밖에 있는 단체식당으로 바삐 발걸음을 재촉한다. 식사시간을 느긋하게 즐기기에는 마음이 급하다. 이 동네(업계) 일은 대개 돗내기(도급)인지라 중식 후 끽연자들이 담배 한 개비 빨아제낄 여유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밥을 먹고 나면 서둘러 오후 일과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일을 원활히 진행할 수가 없다.
허우대가 좋은 슬라브계 노동자들이 배식대 앞에 줄지어 서 있다. 길어진 줄에 괜스레 마음이 초조해진다.
오늘따라 줄이 더디게 줄어드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작업량이 많아서일까? 격려 차원인지 보쌈 수육이 나왔다. 미각을 즐겁게 하는 반가운 음식이지만 나로서는 별로 달갑지가 않다. 다른 상황에서라면 여유롭게 식도락을 즐기겠지만 지금은 맛을 음미할 겨를이 없다. 먹기에 번거로운 보쌈 배식을 건너뛰듯 미각세포가 할 일은 얼버무리게 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서 밥 한 톨 남겨서는 안 된다는 말을 누누이 들어온 나는 어디를 가든 밥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경황이 없다. 허겁지겁 음식을 쑤셔 넣듯 먹고 나면 식판에는 꼭 한 숟갈 정도의 밥알이 흩어져 있다. 대충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느닷없이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도시락이 생각났다.

샐러리맨이셨던 아버지의 도시락에는 항상 한 숟갈 정도의 밥이 남겨져 있었다.
아마 아버지도 오늘의 나처럼 정신없이 바쁜 직장 생활을 하셨길래 그러셨을까?
어렸을 때 백일해를 앓았었는데 (그때 우리는 대개가 그랬듯이 모든 식구가 한 방에서 지냈다) 밤새 기침을 심하게 하는 나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아버지가 역정을 냈던 것을 두고 두고두고 서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감내해야 했던 하루가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면서 그때의 노여웠던 기억이 눈 녹듯 사라진다.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아버지의 정서적 자아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아버지는 모 방직회사의 창업주였던 당신의 고모부 밑에서 오랫동안 일했었다. 일제강점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분은 일본인 아래에서 일을 하며 관련 일을 익혔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넘겨 듣기로는 그분이 일본인에게서 일을 배울 때에는 "바카야로(ばかやろう)"라는 욕설을 들으며 장도리나 몽키스패너 같은 묵직한 공구로 맞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때때로 아버지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오실 때도 있었고 늦은 저녁 어두운 표정으로 집에 오실 때도 있었다. 퇴근하셨을 때 아버지의 낯빛이 어두울 때면 급작스레 달라진 공기에 우리는 긴장으로 경직되었고 행여라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아버지를 피했다. 걱정했던 일은 자주 일어났다. 그럴 때면 으레 그렇듯이 아버지의 감정이 폭발하며 어머니와 다투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자란 환경은 당시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듯이 가부장적 분위기의 전형이었다. 할아버지는 완고하고 엄했으며 할머니는 말이 없으셨고 거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숨죽여 사셨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두 분과 아버지 사이에 얼마나 정서적이고 내면적인 접점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속상하거나 마음 아픈 일을 겪을 때 아버지의 쓰린 마음은 누가 다독여 주었을까?
아버지가 자라온 가정환경이 아버지의 형성에서 차지하는 부분과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한 숟갈 정도의 밥알을 남겨야 했을 만큼 커다란 부담과 긴박했던 직장에서의 일상의 연속이 내가 아는 아버지의 상당 부분을 만들었을까?
내가 겪어 아는 아버지는 스스로를 어루만지는 데에 숙한 분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매정하고 철없던 나는 아버지의 사랑 어린 행동 속에 숨겨진 여린 마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의 서운함을 달래려 했던 아버지의 서툰 모습들...
겨우내 나와 동생을 즐겁게 하려고 톱질을 하며 손수 얼음썰매를 만들던 일...
연을 만들어 산에 올라가 날리던 일...
아버지가 늦은 저녁 사 오시던 먹거리...
늘 월초가 되면 사 오시던 고대했던 소년 월간지들...
단행본 만화책과 도서들...

그러나 어느 순간 좋았던 추억을 사라지고 서운한 기억만 남으면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생겨난 크고 두꺼운 벽...
아버지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가족들로부터의 소외...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인정받지 못한 삶에 대한 참담함과 비애...
아버지가 남모르는 곳에서 흘렸을 소리 없는 눈물들...

오늘 먹다만 듯 남겨진 식판 위의 밥알을 보며 한 인간의 영혼을 헤아려 본다.

작가의 이전글 ■ 싸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