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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준 Apr 24. 2022

여물지 않은 시선

‘교실의 시(김승일 외 9인)’를 읽고

학교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리는 학교라는 것이 품은 이미지

덜 여물었기에 더욱 아련한

교실이라는 공간

담담하게, 무뚝뚝하게 적힌 글에도 아련함이 묻어나는 건

여전히 여물지 않은 빈 교실의 내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교실에서 어디를 보고 있었을까


내 자리는 어디 즈음이었을까

그때의 앉은키가 지금의 앉은키일까

아직도 커튼 그늘 아래 웅크린 채 속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진 않을까


어른의 눈으로 교실의 아이를 본다는 것

여기 모든 눈망울들도 지금 눈앞의 풍경을 시로 기억하겠지

아이의 눈으로 교실의 어른을 본다는 것

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인가


고등학교. 지독하게 현실로 끌어내리는 공간. 의식의 일탈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는 교무실.

2-4, 3-5, 1-2. 획일화된 층층의 현실로 가두는 교실

표본이 표준에 맞게 O표시를 찍어내는 공간


수시. 정시. 입시. 경쟁률. 보내다. 안정성. 등급. 추천. 취직. 일. 돈. 불평. 처세. 혁신. 관습.

1년짜리 정. 1년짜리 존경. 1년짜리 친분. 위선의 위선의 위선과 위선

오늘 나는 현실의 언어와 이상의 언어 중 어떤 언어를 더 많이 교실에서 사용하였는가


한편으로는, 기성을 빙자하여 뉴-학생, 포스트-휴먼 학생들의 차별성과 저항을 칭송하는 것이 촌스럽다.

마치 국어 교과서에 실린, 한물간 신조어를 최신 유행어라고 배우는 단원처럼. ‘MZ세대’라고 그들 모두를 정의하는 멍청한 짓거리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학교는 기성과 미성의 대립이 화두가 아니다. 지금 학생들은 환상과 미화 속에 살고 있지 않다.

오직 두려운 것은 이상의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다.

교실의 시가 사라지는 것이다.


또 하나 두려운 것은

덜 여문 내가 아직 교실에 머물고 있다는 것과 그 교실이 전과 달리 비어 있다는 것이다.




 오래 뒤적거린 기억에는 익명의 소설 같은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겪은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가 섞여 있는데 그 무엇으로도 이 두 층위를 물과 기름처럼 갈라놓을 수 없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위험하다. 차라리 이 모든 이야기를 오랫동안 내가 꾼 꿈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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