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두 달간의 인생의 감정 롤러코스터가 드디어 회사 마지막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마지막 목적지인 ‘해고’에 도착하셨습니다.
모두 하차해 주세요.
그렇다. 회사가 집으로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나와 단둘이 마주한 해고통지서.
한순간에 내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나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해고통지서 한 장만 남기고 내 주변의 모든 게 증발해 버린다. 내 반응을 기다리는 남편이 뭐라고 질문하는데도 하나도 안 들린다. 귀에서는 윙윙대는 소리만 들릴 뿐. 내 옆에 남편이 서 있는지도 몰랐다. 난 말을 더듬는다.
“해…". 말을 잊지를 못한다. 해고통지서라는 단어가 입으로 발설이 안 된다. 내가 그 단어를 스스로 말을 하면 정말 사실 확인이 된다고 느꼈다. 말을 계속 더듬거린다. 남편이 "뭐, 뭔데 그래?" 하면서 내 손에 쥐어져 있었던 서류를 낚아채 간다. 난 소파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남편 이마의 주름이 져진다. 표정이 험해진다. 그리고 그 입에서 욕이 나온다. 뭐라고 뭐라고 분노의 말을 퍼붓는다. 난 아직도 현실 파악이 안 돼서 가만히 앞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눈에 초점이 안 맞춰진다.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현실이 아니라고 머릿속으로 외쳐보지만 고요한 나 혼자만의 외침이다.
몇 초 몇 분을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시간이 정지되는 경험을 처음 해본다. 나를 빼고 모든 게 한순간 정지된 기분.
차츰 정신이 차려진다. 지금 목요일 저녁 6시 25분을 넘어가며 난 소파에 앉아서 해고통지서를 받은 거다.
두 달의 긴 마음고생이 끝난 것인가. 이제 드디어 모든 게 마무리가 되는가. 정신이 없다.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변호사한테 전화한다. 내 전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변호사가 전화를 받는다.
"저 해고통지서를 지금 받았어요."
“알아요. 이미 회사가 해고통지서를 나한테도 보냈어요. 괜찮아요. 소송 걸고…".
어쩌고 저쩌고
말을 계속 이어 나가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난 변호사의 말을 제대로 들리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예상했던 일이니, 해결 방법은 이미 나랑 상의했었다고 근데 난 기억이 없다. 얼마나 요즘 내 정신이 어디로 갔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변호사와 했는지 그 이야기의 결과가 송두리째 삭제되어 있다.
나를 안심시키는 변호사.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머리가 멍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정리가 안 된다. 변호사가 할 말을 남편한테 전해야 하는데 계속 말을 버벅거린다. 머리는 정리가 안되고 내 입에서도 정리 안 된 횡설수설을 시작한다. 눈앞이 하나도 안 보인다.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내 시야를 완벽하게 가렸기 때문이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다스리려고 심호흡을 여러 번 한다. 내 모습을 보고 겁먹은 딸아이가 나를 앉아준다. 딸아이가 내 등을 토닥여준다. 내가 아이를 위로해 줄 때처럼.
지금 난 인생 최악의 고비에 서있다.
이 최악의 고비를 빠르게 넘길 수 있는 재생 버튼을 누르고 싶다. 아니, 아예 이 장면을 삭제해 버리고 싶다.
지금 이 마음의 상처가 언젠가는 내 인생의 에피소드가 되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견디기 힘이 든다.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