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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그늘 Jan 07. 2024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읽고

서평

시집을 세 번 읽었으나 온통 사랑으로 점철된 것으로만 보인다. 내가 잘못 읽은 것인가? 다시 읽어보아도 사랑에 빠졌으나 아니라고 도리질하는 어린아이만 보인다. 작가는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사랑에 갈증을 느끼고 사랑에 울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략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 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 내 허기 가시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奇談)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후략


-식후에 이별하다- 중에서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일 년 내내 허기처럼 밀려오는 사랑의 그리움.

그것은 이상한 기근과 같이 갈증으로만 남는다.     

 

-전략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내 나름대로 글자를 바꿔 다시 시를 적어보았다.


현재는 다만 사랑의 나날 사랑의 나날은 

사랑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사랑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사랑을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남자는 사랑에 취해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사랑에 걸려 넘어질 운명이다

사랑에 취해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은 온통 사랑뿐

이제 막 사랑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 간 데 없이 사라져야 한다     


라고 해석해 본다. 시인은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겉으로는 뿌리치고 거부하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 사랑은 가라앉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에서 헤어날 수 없다.   

  

-전략

(그대 사랑을 수저처럼 입에 물고 살아가네. 시장하시거든, 어서, 나를 퍼먹으시게.)

-중략

사랑을 잃은 자 다시 사랑을 꿈꾸고, 언어를 잃은 자 다시 언어를 꿈꿀 뿐.


-먼지 혹은 폐허 중에서     


사랑이 그리운 그대여 이 시집을 들어라. 사랑을 잃어버리고 우는 그대여 이 시집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보라.


-전략

식탁 위에 포도주를 쏟듯이 어둠이 번진다

소멸을 향해 돌진하는 별들이 무섭도록 밝다

우주의 낭하를 거닐던 창조주조차 옆으로 비켜선다

해변이 권태에는 뭔가 음악적인 것이 있다

-후략


-최후의 후식 중에서     


작가는 유려한 문체로 사랑을 노래한다. 마치 모든 악기로 연주하는 교향곡처럼 우주의 낭하조차 뒤흔들며 창조주조차 피해 가는 아름다운 사랑이 이 책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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