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만나는 반려견들은 하나 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포메라니안이 도도하게 지나간다. 찰랑거리는 손질 잘된 꼬리는 머리카락처럼 찰랑거린다. 동글동글한 얼굴의 비숑 프리제 세 마리가 동시에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든다. “어머 이쁘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리 동네 공원에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기도 하고 궁금증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면 강아지들도 서로 관찰하며 탐색한다. 허세를 부리며 앙앙 짖어대는 개도 있다. 견주 뒤로 숨기도 하고 견주를 바라보며 저도 한번 짖어본다. 마치 아기들 같다. 엄마 품에서 엄마를 믿고 소리 질러 보기도 하고 그 품속으로 숨어들기도 하는 것처럼 세상에 무서운 것 없는 아기들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요즘은 반려견이라고 한다. 반려는 짝이 되는 동무라고 국어사전에 적혀있다. 자식처럼 대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예전 시이모님 댁에 작은 치와와를 키운 적이 있는데 멀리 갔다가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반겨 준다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나는 개를 만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부들부들 떨리는 트라우마가 올라온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더없이 이쁘고 귀엽지만, 나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개는 크든 작든 무섭다. 길 가다 혹여 마주칠 일이 있으면 우선멈춤 하고 먼저 지나가길 바라거나 길을 돌아서 다른 길로 지나간다.
나 어릴 때만 해도 개는 집 대문에서 낯선 이를 경계하며 집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오래전 시누이가 갓 태어난 하얀 진돗개를 얻어다 시댁에 맡겼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어린 강아지는 식구들이 이쁘다고 쓰다듬자 놀랐는지 오줌을 지리고 구석에 숨으려고 했었다. 백구라 이름 짓고 집 대문 밖에서 키웠다. 먹다 남은 음식이 그 강아지의 식사였고, 모르는 사람들이 예쁘다 쓰다듬어 주면 꼬리만 흔들 뿐 짓는 것을 거의 못 봤을 만큼 순둥이였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많이 귀여워했었다. 개는 무럭무럭 금방 자랐다. 우리 아이들도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먹을 것도 챙겨주곤 했었다. 어느 날 시댁에 내려가니 개가 없었다. 누가 데려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고 하셨다. 우리 아이들은 정이 들었었는지 많이 섭섭해했었다. 그날 동네에 개장사가 지나갔다고 했는데 문간에 있던 백구를 잡아간 것 같다고 하셨다. 예전에 흔한 일이었다.
반려동물들을 많이 키우고 있어서인지 공원에 산책할 때면 개모차를 타고 가는 강아지, 작은 발로 종종 걸으며 신나서 여기저기 쳐다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들이 귀엽고 예쁘지만, 반려견 곁을 지날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이를 드러내고 컹컹 짖어대는 셰퍼드가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추운 겨울이었다. 두꺼운 바지에 빨간 내복까지 껴입고 친구집에 놀러 갔다. 친구네 집은 과자 공장이었다. 친구들 서너 명이랑 같이 철 대문을 열고 한 줄로 들어가는데 커다란 셰퍼드가 갑자기 컹컹 짖어댔다. 엄청난 덩치로 덤빌 듯이 짖어대는 소리,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모습에 질겁을 했다. 먼저 들어간 친구는
“괜찮아 얼른 들어와 안 물어. 우리 개는 순해.”
하면서 손짓하며 불렀다. 셰퍼드는 짧은 목끈이 끊어질 듯이 날뛰며 짖었고 나는 두려움에 친구 손만 바라보고 달려갔다. 그 순간 셰퍼드는 내 엉덩이와 허리 사이를 물었다. 바지와 빨간 내복과 팬티가 찢어지면서 엄청난 아픔이 몰려왔다. 그다음 기억은 없다. 물렸을 때의 놀람과 아픔이 지금까지 내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개를 보면 놀라 벌떡 일어나는 것 같다. 지금도 왼쪽 엉덩이 위쪽에 파란 멍 자국이 남아 있다.
무더위를 피해 일산 스타필드에 놀러 갔다. 주말이라 인파는 지하층에서 4층까지 그 넓은 공간을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음식점도 빙수 가게, 카페도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유명브랜드카페에 앉아 아이스커피와 케이크를 하나 시켜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린애들이 많이 보였다. 아직 백일도 안된 아기부터 마구 뛰어다니는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요즘 저출산 시대라 아이가 귀하다고 하지만 그곳만큼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 공원을 산책하듯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깜짝 놀랐다. 자세히 관찰하니 쇼핑몰에 개모차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고, 심지어 쇼핑몰에서 대여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목줄을 맨 대형견들도 입마개 없이 다니고 있었다. 문화충격이었다. 이렇게 복잡한 쇼핑몰에 반려견은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려견 중에 남의 가게 앞에 쉬를 해서 견주가 휴지로 닦아내고 있었다.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을 종종거리며 걷는 강아지들을 보면서 미끄러운 곳에서는 탈구가 잘 되는 반려견도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개털로 인한 알레르기를 가진 아기들도 염려되었다. 아무리 반려동물이 많은 시대라고 하지만 개모차와 반려견들의 산책을 쇼핑몰에서 보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던 터라 생소해 보였다.
아이쇼핑을 하다가 쇼핑몰 주변에 있는 소파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앉아 있는 바로 근처에 커다란 레트리버가 다가왔다. 주인이 목줄을 잡고 있었지만, 바짝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음에도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형견들이 입마개도 하지 않고 다니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들이 있어 불안해 보였다. 개 이빨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인지 당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걱정이 밀려왔다.
반려견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니 시대에 발맞추어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서로 조심하고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견 입장에서도 그들 눈높이에서 볼 때 사람들의 다가오는 다리들이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먼저 공격한다면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견주가 잘 케어하니까 왔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목줄을 한 대형견에 끌려가듯이 가는 견주를 보면 과연 케어할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다. 개만 보면 트라우마로 공포심을 갖는 나로서는 사람들이 많은 번화한 쇼핑몰을 횡행하는 것이 썩 보기 좋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반려견 유치원을 만들어 개들도 대리석을 걷다가 탈구가 될 확률을 줄이고, 아기들도 위험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