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서 누릴 수 있는 여행의 재미
“집에서 허락을 해줘?”
주변 사람들에게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제일 먼저 돌아오는 반응이다. 다 큰 성인 남성이 언제부터 놀러 갈 때 허락을 받아야 했는지 모르겠다. 왠지 유부남이 외박하는 걸 음흉하게 생각하는 무언의 정서가 깔려있다고 해야 하나.
“내가 가겠다는데 허락은 무슨...”
그럼 필자는 그냥 상남자인 척 답하고 넘어간다.
사실 이번 여행은 그냥 갑자기 결정됐다. 몇 달 동안 진행되던 바쁜 일이 끝나서 연차를 쓸 수 있는 여유가 좀 생겼는데 마침 아내 직장은 바쁘고 아이들도 새 학기 시작하는 3월이라 함께 여행 가기가 어려웠다. 그냥 집에서 쉴까 하다가 그러면 아까운 연차만 날리고 집에서 허송세월만 보낼 것 같아 혼자 가는 여행을 결심했다.
그래, 이번에는 나만을 위한 여행을 가보자.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여행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 위주로 가게 된다. 식당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 그리고 가족여행에서 아빠의 역할은 운전기사, 짐꾼 및 사진사가 되는데, 이렇게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쉬다 온 건지 일하다 온 건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항상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만 찾다보니 이제는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주제는 "나를 찾는 여행"으로 정하고 가족들과 함께라면 잘 안갈 것 같은 코스로만 정했다.
오사카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덴덴타운이다. 원래 덴덴타운은 우리나라의 용산과 같이 전자상가거리이지만 프라모델, 피규어, DVD와 같은 오타쿠 상점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전자제품이야 소니 워크맨 시절이나 일본 알아줬지 지금은 별 볼 일 없다. (아재 인증) 이것 저것 구경하다보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오래 서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소장하고 싶은 레어템들이 너무 많지만 주머니 사정상 눈요기만 해서 그런지 더 힘이 빠지는 것 같다. 슬슬 구경을 마무리하고 돌아갈까 하는데 한쪽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일본어는 몰라도 선명하게 보이는 영문 "LOVE TOYS" 그것도 두 개 층에 걸쳐서 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다리가 아픈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단숨에 올라가 보니 엄청난 양의 DVD와 성인용품들의 리얼리티에 압도되었다. 일본이 성진국(?)이라더니 과연 스케일이 다르군.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바로 바다 건너 옆 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기는 하다. 뭐라도 하나 기념(?)으로 사볼까 하다가 괜히 쑥스럽고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봐 그냥 눈요기만 실컷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보통 오사카여행을 하면 하루이틀 정도는 근교의 도시를 여행하게 되는데 그중 한 곳이 오늘 방문하는 고베이다. 고베의 주요 관광지는 서양건축물들이 많은 기타노 지역과 야경으로 유명한 베이에어리어 지역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필자는 이번 여행의 컨셉(?)에 맞게 다소 특이한 곳을 방문했다. 첫번째 방문한 곳은 세계 최장(이었던) 현수교 아카시대교이고, 이번 글에서 소개할 철인28호 조형물이다.
철인28호는 고베 출신 만화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1956년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고베지진재해의 부흥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 높이 18m의 대형 조형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도 오래전 만화여서 사실 필자도 직접 만화을 보지는 못했으나 - 그렇다. 필자는 생각보다 젊다!! - 어린시절 문방구에 진열된 장난감을 본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 만화의 유명세는 둘째치고 이러한 대형 캐릭터 조형물을 만들 오타쿠 정신이 일본 아니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건 직접 봐줘야한다!!
막상 실제로 보니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다. "와~ 크다" 이정도? 그리고 직업병이긴 하겠지만 "유지관리비 만만치 않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필자가 철인28호에 대한 추억이 없고 주변에 관련 컨텐츠나 볼거리가 없이 조형물만 덜렁 있어서 그럴 수 있겠다. 어찌보면 동네 놀이터에 동상 하나 세워논 느낌이랄까? 한 시대를 풍미한 만화임에는 분명할텐데 지나간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나보다.
다 큰 아저씨가 피규어 구경하러 일본까지 갔다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나만 즐겁고 재미있었으면 그만이다. 만화 캐릭터는 아이들도 좋아하니 가족여행으로 가면 더 좋지 않느냐고? 아마 덴덴타운에서 내가 걸어다닌 거리와 철인28호 앞에서 사진찍은 시간을 독자분들이 들으신다면 아마 아이들은 데리고 가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일정도 내 맘대로, 장소도 내 맘대로, 모든걸 내 위주로 하니 눈치볼 것도 없고 의견충돌로 다툴 일도 없다. 혼자가는 여행의 장점이 이런 것 아닐까?
전국의 아저씨들이여, 혼자 떠나라! 숨덕은 그만하고 밖으로 나오라!
* 이번 여행은 코로나 이전인 2018년 3월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