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1 - 아이디어편
나는 2018년도에 미시건대(University of Michigan) MBA를 재학했다. 당시 프로그램 친구들 중에서는 어린 나이라 일반 관리자보다는 전문성을 가진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이전에 웹 개발과 마케팅을 대행해주는 회사를 창업했던 경험으로 나는 정보과학 석사(Master of Science in Information)를 진학했고 거기서 처음으로 인공지능을 알게 되었다.
보통 회사는 경영, 전략팀과 데이터, 엔지니어링 팀 등 다양한 분야에 세부단위의 조직을 만들고 그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한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던 2018년도만 해도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크게 화두에 오르지도 않았었고 일상적이지 않았던 분야, 예를 들어 자율주행, 알파고, 생명공학 등에서만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지 우리가 흔히 접했던 이커머스 비즈니스나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에서의 인공지능은 아직 머나먼 미래의 기술처럼 느껴졌었다.
당시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실제 브랜드를 운영하는 실무자분들과 대화를 나눴었는데, 대부분이 데이터팀이 부재한다거나 데이터팀이 있더라도 운영 효율을 개선할 만큼 데이터 주도의 비즈니스 구조가 들어선 느낌은 아니었다. 경영 전문가와 인공지능 전문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분명히 존재했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 있어서는 경영과 엔지니어링을 같이 공부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현업 실무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아가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아갔다. 처음에는 마케팅 분석을 도와주는 비즈니스 분석도구로 시작하였지만 조금 더 세분화하여 니치마켓(Niche Market)을 공략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놀랍게도 퍼포먼스 마케팅, 퍼널 최적화 마케팅 등을 위한 자동화 마케팅 분석도구는 너무나 많은데 그렇게 첫 구매를 잘 이루어낸 자신들을 진짜 고객을 직접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분석도구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순간 와우 포인트가 왔다. 수십만, 수백만의 고객을 보유한 브랜드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고객을 하나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브랜딩과 마케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앞단의 자동화는 현재 플레이어들에게 맡기고 나는 '진짜' 분석을 가능케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금 프러덕인 리텐틱스가 탄생하였다. 리텐틱스는 지금까지 잘 쌓아둔 고객 거래 데이터만으로 잔존율, 코호트, 고객 생애가치, 수요예측 분석을 시작으로 다음 구매 가망 상품을 알려주는 고도화된 추천 알고리즘 시스템까지 제공한다. 말 그대로 이탈할 것 같은 고객을 어떻게 잔존시킬지, 그리고 이미 이탈했다면 어떻게 다시 대려 오게 할 수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전략 도구이다.
그렇게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개발하여 최대한 많은 B2C 비즈니스 실무자분들과 제품의 컨셉을 검증하는 데모 세션을 진행했었다. 그때만 해도 이 아이디어로 정말 창업을 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 가득했었는데 어느 날 쿠팡의 산하 조직인 쿠팡 플렉스 전략팀 리더분께 프로토타입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 리더분께서 지금 적절하게 이런 시각화가 필요한 시점이고 고객 잔존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시각화 도구인 태블로나 Power BI보다 더 커스텀이 되며 추천 알고리즘 등의 액션 아이템이 잘 동작한다면 빠르게 도입해보고 싶다는 일종의 커밋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대웅제약의 고객 마케팅 본부장님께 데모를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사용하시고 싶으시다고 커밋을 주셨다.
당시 나는,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알만큼 큰 두 회사가 내 아이디어를 좋아하고 비용을 지불하겠다는데 더 이상 이 창업을 미룰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지배했고 곧장 나는 프러덕 론칭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디어가 획기적이거나 혁신적이지는 않다. 나는 지금도 혁신적이고 이 세상에 긍정적인 선순환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비즈니스들을 많이 만난다. 내 아이디어가 혁신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고객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딱 하나인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거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고객도 원하는 것이기 때문.
투자계에 하버드라 불리는 YC가 한 말이 있다. "Make something people want." 고객이 원하는 프러덕을 만드는 것, 이 기본적인 DNA를 앞으로 우리가 꾸준히 지켜야 할 규칙으로 잡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