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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Mar 28. 2023

가로수길 누가 죽었대?

핫플레이스 언급량 1위 성수동 Vs. 젠트리피케이션 대표 가로수길

#1

2월, 성수동 현장 취재

2월 성수동을 취재했다. 공실률 '0'이라며 언론상에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가 보니 말 그대로였다. 공실은 거의 없고 사람들은 강물처럼 흘렀다. 키치와 명품, 오버와 언더, 학생과 직장인, 세대도 다양했다.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그게 다였다.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차할 곳을 찾아 동네를 배회했다. 먹을 건 많았으나 돈가스 한 접시에 15,000원을 넘을 정도로 비쌌다. 거리 사진은 예쁘지 않았다. 아름다운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런 날것이 주는 느낌이 매력이라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저 흔한 구도심의 주택가와 같았다.


#2

3월, 가로수길 생활 시작

사무실이 신사동으로 이사를 했다. 신사역과 압구정역의 중간쯤이다. 가로수길과 압구정 로데오를 모두 사정권에 두게 됐다. 가로수길부터 가봤다. 하도 상권이 죽었다는 보도를 많이 접했기에 궁금했다. 최근 가장 핫하다는 성수동을 누볐던지라 비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직접 가보니 가로수길 죽지 않았다. 성수동에 핫플 바통을 넘겼다고? 과한 해석이라고 본다. 이유는 명확했다.




1. 정체성_ 성수는 오피스, 가로수길은 쇼핑 거리

성수는 셀럽이 주도해서 커진 상권이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들의 도시다. 고로 패셔니스타가 없다. 핫플 하면 떠오르는 '스트리트 화보 촬영'도 한 번을 못 봤다. 뉴진스 얼굴이 걸린 무신사 사옥을 찍는 일반인들은 다소 있었다.


가로수길은 패셔니스타가 많이 출연한다. 모자를 눌러쓴 8등신, 소멸 직전의 작은 얼굴을 가진 이들이 활보한다. 거리를 걷다 보면 K팝 아이돌의 팬인 것 같은 외국인도 많이 보인다. 아시안,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언어로 수다를 떨며 상가 구경에 열을 올린다. 쇼핑 상가가 즐비해 있다 보니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이들이 눈에 띄고, 거리에서 화보를 찍는 쇼핑몰 모델들도 종종 보인다.



2. 콘텐츠_ 성수는 새 거, 가로수길은 오래된 거

성수는 비싸다. 상가 건물만 노후된 그 상태로 쓰는 것일 뿐, 그 안의 모든 건 새 거다. 겉에만 낡았다는 말이다. 콘텐츠가 새 거이다 보니 가격도 요즘 시세를 적용한다. 메인 거리인 연무장길의 경우, 웬만한 외식 가격이 12,000~15,000원은 기본이다.


가로수길은 전통이 있다. 강남 한복판, 비싼 임대료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30년 전부터 있던 식당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가로수길 메인 도로가에 한 해 말하는 거 아냐?' 의심마저 들 정도다. 골목골목 분식, 백반, 고깃집, 우동집 등은 10년 전 가격 그대로 팔고 있다. 백반 한 끼에 7000~8000원 수준이다. 어떤 분식집은 김밥 한 줄에 2,000원이다. 이들 가게는 외관이 낡았지만 내부도 예전 그대로인 진짜 노포다.



3. 건물_ 성수는 슬럼 문화까지 계승, 가로수길은 완벽 상권화

성수는 80~90년대 대한민국 주택의 대표 양식인 '빨간 벽돌집'을 그대로 쓴다. 그게 브루클린이고 베를린 감성으로 보도됐다. 실제로 성수의 상가들은 낡은 건물이 주는 멋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그래서 사진이 안 예쁘다. 영혼을 담은 후보정이나 애초에 각 잡고 시안을 찾은 뒤 그대로 찍어야 예술(?)적인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사진은 둘째치고 거리도 더럽다. 골목은 담배연기로 가득하고 꽁초도 여기저기 나뒹군다. 옛 우범지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으니 그 거리를 누리는 이들도 공중도덕을 쉽게 어긴다는 생각이 든다. 분위기를 환기시킬 벽화도 딱히 없다.


가로수길은 정비됐다. 메인도로를 따라 신식 건물이 줄지어 있고 애초에 주택보다 상가, 빌딩 위주로 구성되어 깔끔하다. 빨간 벽돌집을 상가로 개조한 건 성수와 같지만, 집간 간격이 넓어서 걸으며 옛주택의 향취를 느끼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 물론 유흥업소 전단지가 나뒹굴며 성수와 다른 면에서 지저분하다. 하지만 그건 개개인의 준법정신 문제는 아니다.

 


4. 마케팅_ 성수는 진행 중, 가로수길은 마케팅 자본 없이도 굳건

성수가 가장 뜬 건 역시 마케팅이다. 직접 가 보니 마케팅 실험이 많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기업 팝업스토어, 간판 없는 카페, 인스타에 올리면 괜찮게 보이는 식당, 카페지만 언제든 팝업스토어로 탈바꿈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공간 등 실험적인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성수만의 '힙함'은 거기서 나온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팝업스토어는 반짝 행사가 끝나면 사라지고, 실험은 어디까지나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다. 일시적이란 말이다. 그런 점에서 계속 궁금했다. 과연 성수의 색은 뭔가? 맛집도 사라질 것이고 명품 스토어나 레트로 분위기의 술집도 유행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이다. 사상누각? 모래 위 누각처럼 와르르 무너질 허상 아닌가? 잘 되고 있는 지금은 모른다. 그러니 고민해야 한다. 성수가 팝업의 성지란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관하여.


가로수길은 애초에 유흥, 쇼핑으로 떴다. 뜨다 보니 마케팅 자본이 흘러들었고 팝업의 성지가 됐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지금은 마케팅 자본이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유흥과 쇼핑이 계속되며 굳건히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노포나 전통의 맛집이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여전히 단골 장사를 하며 명맥을 유지 중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성수의 낡은 주택을 그대로 계승한 상권이 추억을 되살린다고. 대체 누구의 추억인가? 생겼다 사라지길 쉽게 하는 지금의 성수에서 추억이라 할 만한 게 있을까? 대림창고도 이미 예전의 그것과 다르다는 건 알만한 이는 다 안다. 겉만 예전과 같은 모양이 유지된다고 추억이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가로수길이나 압구정 로데오의 40년 된 백반과 분식집은 그런 점에서 진짜다. 마케팅 자본이 빠진 신사동, 압구정동은 이제야 본색깔을 찾았다. 그에 반해 성수는 과연 마케팅이 아니어도 버틸 힘이 있을까? 그게 뭔지 나는 못 찾았다. 아직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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