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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火葬)

통일신라시대를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4단계 BK21

동아시아 SAP 융합 인재 양성 사업팀

서유안 (석사과정, 참여대학원생) 




화장(火葬)은 죽은 자를 불에 태워 처리하는 장례 방식으로,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세계 각지에서 채택되어 왔다(하대룡, 2012).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국토 효율성・관리 용이 측면에서 망자의 주검 처리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급격히 변화하였다. 그에 따라 2021년 기준 화장율은 90% 이상 급상승하게 되었고, 보편적인 장례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화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화장 인골 출토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면 화장은 신석기시대부터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석관묘에서도 일부 확인 가능하다. 


한편 삼국시대에는 중국에서 전래된 불교를 국가적으로 수용하면서 많은 문화전통에 변화가 나타나며, 삼국 통일을 이룩한 신라 문무왕이 남긴 유조(遺詔) 중 ‘依西國之式以火燒葬’ 화장을 실시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은 가장 보수적인 의례행위인 상장의례에 변화가 나타났음을 알려준다(차순철, 2008). 화장을 흔히 불교식 장법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불사리 신앙과 장골기와의 연관성에서 밝혀진 바 있다(정길자, 1988).


신석기시대 화장 사례(진주 상촌리 유적)


화장이 수용된 후 유골을 처리한 방법은 장골(藏骨)과 산골(散骨)으로 나눠진다. 장골은 화장한 유골을 용기에 담아 땅 속에 묻는 것, 산골은 화장한 유골을 산이나 강・바다 등에 흩뿌리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화장 후 유골을 탑파(塔婆)나 부도(浮屠)에 안치한 경우 그 용기는 사리용기(舍利容器)라고 하며, 매장하는 용기는 장골기(藏骨器)라 한다. 또한 장골기가 매납된 무덤은 화장묘(火葬墓)라 한다 (최성애, 『통일신라의 돌상자와 뼈단지』, 국립중앙박물관홈페이지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16909).


<조성배경>

통일신라시대에는 화장묘 조성배경과 관련한 기록이 부족하다. 따라서 가까운 시기인 고려시대의 『고려사(高麗史)』를 통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후손이 없는 왕족의 경우, 화장을 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 경우, 질병으로 인해 훙거한 경우, 개인의 종교관 및 후손이 불교를 신봉한 경우 화장을 실시한 것으로 확인된다(정형철, 2002).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개인이 장법을 선택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선택하기보다는 특수한 상황일 경우 필요에 의해 선택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손병국, 2015).


<변천 과정>

통일신라시대 화장묘는 6세기 후엽 또는 7세기대에 왕경인 경주지역에서 등장한다. 8세기대에 왕경에서는 여러 유형의 구조가 확인되며, 화장묘의 조성이 지방까지 보급된다. 그러면서 장골기의 재질 및 구성에서 왕경과 지방간의 차이가 확인된다. 왕경에서 전용장골기(연결고리유개호)와 고급용기(연유도기)가 확인되는 반면, 지방에서는 대체로 일상생활용기를 장골기로 전용하여 사용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또한 군집하여 화장묘가 조성된 예가 지방에서 나타난다는 점에서 집단성이 확인된다(손병국, 2015). 한편, 9~10세기대에는 사회혼란 속에서 사찰에 불탑을 건립하게 된다. 그에 따라 사찰 안에 자신과 가족의 복을 구하고 망자의 극락왕생과 다가올 내세를 기원하기 위한 염원을 담은 석탑을 세우는 조탑신앙으로 사후관념과 장송의례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 결과 무덤으로서 화장묘가 가지는 의미는 점차 소멸하게 되며, 오히려 화장 후 산골을 하고 사찰에서 망자를 추복하는 제사를 행하는 모습으로 장례의식이 변화되었다(차순철, 2008).


<피장자 성격>

국왕 8명(문무왕・효성왕・선덕왕・원성왕・진성왕・효공왕・신덕왕・경명왕), 승려 5명(혜공・자장율사・연광・신행선사・징효대사), 육두품 2명(관초리・인장)의 화장 기록이 확인된 점, 화장을 위해서는 대개 약 1톤 정도의 마른 나무를 태워야 한다는 점에서 일정 이상의 경제적인 능력과 신분적인 지위를 가진 유력층으로 추정된다(손병국, 2015).                        


통일신라시대 장골기

표 1. 화장 관련 기사가 확인되는 신라 국왕


표 2. 화장 관련 기사가 확인되는 신라 승려


표 3. 화장 관련 기사가 확인되는 신라 육두품



□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

동아대학교 박물관, 2001, 『진주 상촌리 선사유적 -도판・부록-』

경상대학교 박물관, 2011, 『거창 개봉고분군』

정길자, 1988, 「中國高僧傳을통해 본 佛僧의 葬法」, 『嶺南考古學』 5 

, 嶺南考古學會

정형철, 2002,  『고려시대 火葬에 대한 재검토』, 동아대학교 석사학

위논문

차순철, 2008, 「통일신라의 화장과 불교와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고찰 

: 造寺·造塔신앙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文化財』 제41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하대룡, 2012, 「인골 분석을 통한 장례 방식의 검토 – 불교식 火葬 

이전의 선사・고대 火葬 문화의 특성-」, 『한국고고학전국대

회 발표문』 제36호, 한국고고학회

손병국, 2015, 『統一新羅時代 火葬墓』, 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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