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고려시대의 의례

땅의 귀신 쫓기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4단계 BK21

동아시아 SAP 융합 인재 양성 사업팀

정유라 (석사과정, 참여대학원생) 



  앞서 ‘선사시대의 의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죽음(死)은 개인의 인생을 마무리 짓는 큰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에 죽음에 대한 관념은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일반적으로 사망자를 위해 행하는 모든 의례를 상례(喪禮), 상례 과정 내에서 주검을 묘지까지 운송하고 매장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의례를 장례(葬禮)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고려시대의 상‧장례를 확인하는 방법은 첫째, 문헌기록을 찾는 법, 둘째, 현존하는 고고자료, 즉 무덤을 열어보는 법이 있습니다. 저희는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무덤을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덤에서 확인되는 여러 요소(묘제, 축조 방법, 입지…) 중 무덤에 넣는 껴묻거리, 즉 부장품(副葬品)은 당대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고려시대 무덤의 부장품으로는 청자, 도기, 청동용기류 등의 식기류가 대표적이며, 나아가 청동거울, 분합 등의 화장구, 동전, 철제 낫, 가위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보통 피장자가 생전 사용하던 일상용기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의도가 보이는 유물들이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장례 과정에서 땅의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벽사를 위한 유물들은 주로 금속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벽사의 의미를 가진 유물과 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동전입니다. 동전은 피장자의 신분이나 부의 정도를 보여주기도 하는 유물이지만,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동전은 관 바깥에 뿌려져 외부의 사악한 것으로부터 관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이승일, 2006). 이외에도 동전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망자의 부와 번영을 기원하며 동전을 부장한다고 보기도 하고(박미욱, 2006), 토지를 점령하고 있던 원래의 주인인 지신(地神)을 위해 토지거래의 목적으로 동전을 부장한다고 보기도 합니다(小林義孝, 1999).


청주 봉명동 Ⅴ지구 3호 토광묘 출토 동전


  두 번째는 철제 낫입니다. 철제 낫은 농기구이기 때문에 철제 낫의 출토는 피장자의 신분이 농민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철제 낫은 무덤 안의 요갱(腰坑, 피장자 허리 부근의 유물 부장용 구덩이)에서만 출토되며, 상대적으로 높은 신분을 가진 피장자의 무덤에서도 출토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제 낫이 출토된다고 해서 단순히 농민의 무덤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박미욱, 2006). 철기에는 땅의 기운을 누르고, 나쁜 기운을 없앤다는 벽사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묘광 바닥의 가운데나 요갱에 부장되는 철제 낫은 지진구(地鎭具, 땅의 나쁜 기운을 잠재우려는 물건)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이성배, 2013). 부식이 심해 용도를 알 수 없는 철편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철제 낫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안산 부곡동 옛무덤 서4호 토광묘  출토 철제 낫

  그렇다면 이 유물은 어떤 의도로 볼 수 있을까요? 


화성 우음도 고려 분묘군 27호 적석토광묘
좌) 27호 적석토광묘 출토 철제  솥 내의 안면골과 치아 우)27호 적석토광묘 출토 철제 솥 


  이것은 화성 우음도 고려 분묘군 27호 적석토광묘에서 출토된 철제 솥입니다(사진 출처 : 한국문화유산연구원, 2018). 이 철솥은 뒤집힌 상태로 바닥면에서 출토되었는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철솥 내에서 안면골과 치아가 확인되었다는 점입니다. 시신을 부장하면서 얼굴 위에 철솥을 가면처럼 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신의 영혼이 입으로 나와 밖을 떠돌지 못하게 철솥으로 막아버린 것일까요? 그렇다면 피장자는 병에 걸렸거나, 나쁜 일을 저질렀던 사람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지만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에 앞으로 자료가 누적되면서 자세한 의미를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고려시대 사람들은 망자가 안전하게 내세로 갈 수 있도록 땅속의 악한 귀신을 쫓기 위한 의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철솥의 부장 사례를 통해 피장자의 영혼이 지상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의례가 치러졌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고고자료를 통한 의례의 복원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두고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루어집니다. 아직은 고려시대의 고고학적 연구가 미진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상상이 모여 한 사회의 단편을 써 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 참고문헌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 1995,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구간(안산-안중

간)유적 발굴조사 보고서(1)』

박미욱, 2006, 『고려 토광묘 연구 – 부장양상을 중심으로』, 부산대학

교 석사학위논문

박종기, 2018, 「고려왕조와 다원사회」, 『내일을 여는 역사』 71‧72, 

내일을여는역사재단

이성배, 2013, 『충청지역 고려, 조선묘의 내부시설 연구 – 요갱과 벽

감의 변화양상을 중심으로』, 대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이승일, 2002, 『高麗墓 出土 中國錢에 대한 硏究』, 동아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忠北大學校博物館, 2016, 『淸州 鳳鳴洞 遺蹟-Ⅴ地區 調査報告-』

한국문화유산연구원, 2018, 『華城 牛音島 高麗 墳墓群(Ⅰ)』

작가의 이전글 화장(火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