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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의 빛

황룡사 광장 유구와 신라의 연회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4단계 BK21

동아시아 SAP 융합 인재 양성 사업팀

 문다솔 (박사과정, 참여대학원생) 




  경주 황룡사는 그 웅장한 규모와 문헌기록, 발굴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 명실상부한 신라의  랜드마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황룡사에서 거대한 연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바로 최근에 발굴된 황룡사지 광장과 도시 유적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황룡사지 남문지 앞에서 발굴된 이 유적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대규모의 공지로, 황룡사지와 관련된 연등회·팔관회 등의 각종 연회가 열린 장소로 추정됩니다. 과연 신라에서 열린 연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황룡사 광장과 도시 광장유구
동궁과 월지 ‘가’지구와 황룡사 광장유구의 관계


  우선 연회의 장소가 되는 황룡사 광장유구 먼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황룡사 광장유구는 황룡사지의 남문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광장으로, 이 장소에서 실제 연회가 거행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독특한 점은 연회가 열리는 광장이 위치한 장소가 왕궁인 동궁과 월지와 바로 맞닿아 있다는 것으로, 왕궁 바로 옆에서 대규모의 연회가 벌어졌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왕과 태자의 거주지 옆에서 떠들썩한 연회라니 오늘날의 모습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문제의 단서는 황룡사 광장유구와 맞닿아 있는 동궁과 월지에 있습니다. 광장유구와 닿아 있는 이 건물지는 동궁과 월지 ‘가’지구 28호 건물지로 2X6칸의 세장방형 건물지입니다. 건물지의 규모, 위치 등을 볼 때 문지로 추정되는데, 왕궁 동편의 문지라는 점에서 2층 누각의 형태로도 생각됩니다. 중국 북위시대에는 초파일 연회에 대규모의 연회가 이루어 졌으며, 황제는 문루 위에서 꽃을 뿌리고 불상을 향해 경배하는 의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또 고려의 팔관회에서도 왕이 의봉루에 나와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고 합니다. 

  따라서 동궁과 월지 28호 건물지 역시 이와 비슷한 모습의 행사가 열렸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즉 신라의 왕은 궁궐의 문루에 올라 의례의 주관자로서 황룡사 광장을 내려보며 연회의 시작을 알렸고, 왕이 지켜보는 아래에 연회가 거행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회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요? 현재 황룡사 광장유구에서 이루어진 연회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는 직접적인 고고자료는 없습니다만, 문헌자료를 통해 간접적인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경문왕 6년(866) 정월) 이 달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보고 이내 백관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11


(진성왕 4년(890) 정월) 15일에 왕이 황룡사에 거동하여 연등을 관람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권11


  기록을 통해 신라의 연회는 연등회 등의 불교 행사와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등이 사찰 곳곳에 걸리고, 왕이 행차한 가운데서 연회가 열리는 모습이 상상되시나요? 신라의 달빛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연회의 모습을 본 적 없으나 분명 흥겨운 모습이었을 것이라 예상해봅니다. 



□ 참고문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20, 『慶州 皇龍寺 廣場과 都市 Ⅱ -방 도로와 광장-』

윤선태, 2020, 「新羅王宮과 國家寺刹 - 그 분포와 도로 체계를 중심으로-」. 『신라문화』 57,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채상식, 2015, 「고려시기 연등회의 운영과 추이」, 『한국민족문화』 54,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추정도 이미지 참고자료

KBS 스페셜(2017. 03. 03) – 황금기사의 성(1부) 달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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