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사이가 좋은 기억이 없던 나의 부모님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선택하셨다.
정리할 것도 나눠가질 것도 없는 결별이었다.
이미 두 분은 오래전부터 별거를 하셨고 서류상으로 남은 부부였으며 이따금씩 나에 대한 행사들 이를테면 상견례 결혼식 등등에서 부모로서 만날 뿐이었기에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혼자 계시는 것에 대한 걱정이 늘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몇 년이 지나 두 분은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
어느 날 엄마는 남자 한 분을 모셔오더니 함께 지내기로 했노라며 선언하셨다.
엄마는 그런 분이었다.
매사 미룸이 없고 숨기는 것이 없었다. 난 그저 알겠노라고 했다.
어느 날은 아빠집에 갔더니 절대 아빠의 것일 리 없는 덧신이 하나 있었다.
키티 고양이가 그려진 분홍색 덧신이었다.
난 아빠를 놀릴 심산으로 덧신을 꺼내놓으며 물었지만 아빠는 주웠노라며 황급히 말을 돌리더니 예뻐서 너 주려고 챙겨놨다고 했다.
"덧신을? 남신 던걸?"
되묻는 나에게 아빠는 싫으면 말라고 덧신을 치웠다. 나는 그 뒤로 아빠 혼자 지내는 집에 가는 걸 자제했다.
몇 달이 지났고 아빠는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아빠가..."
"응. 어떤 분이신데?"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아빠는 어떻게 알았느냐며 물었다.
"키티 덧신 때부터?"
다행히 두 분 다 무척 좋으신 분들이었고 내 아이들까지 마치 친손주처럼 예뻐하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모다야. 그 호칭을..."
아빠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이 혼자되고 나 하나 보고 사는데... 그 호칭이 좀 서운한 것 같더라."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는 아빠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 역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새아버지, 새어머니라고 부를까도 생각해 봤지만 남보기가 어떨까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사님이나 아저씨보다 왠지 더 거리가 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결국 내 호칭은 두 분이 재혼하시기 전 그대로 아저씨(의붓아버지), 와 여사님(의붓어머니)으로 굳어졌다.
한번 그렇게 되어버리고 나니 고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빠... 나도 여사님이 좋은 분이고 너무 감사하고 그렇지만 어머니는 좀 힘든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엄마가 있잖아. 왠지 엄마한테 미안한 기분이 들고 그러네. 마음은 당연히 가족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호칭문제는 미안해."
아빠도 더 이상 말하지 않으셨다.
비슷한 이야기로 엄마도 어느 날 말을 꺼냈다.
"너 '아저씨'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 니들이 그러니까 애들이 따라서 아저씨라고 부르잖아!"
어찌 보면 별것 아닌 문제겠지만 나에겐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고지식한 면도 가지고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이 다된 나이에 나타난 새로운 부모님이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고민을 말했을 때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해. 세상에 어머니가 널렸는데. 시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르고 친구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르고 야. 나는 시장 가서 나물 살 때도 할머니들한테도 어머니라고 그래. 그게 어렵냐?"
어렵다...
친구말처럼 시어머니도 어머니고 친구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분들께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건 그런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족으로서 받아들이는 것과 부모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뭇 그 무게가 다르다.
나를 낳아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받았던 보살핌과 애정 그리고 희생. 나의 그 수많은 고민들과 기억을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존재.
내게는 그것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가족으로서 우리가 좀 더 가까이 더 많은 기억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언젠가 불러드릴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