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다 Sep 20. 2023

아빠, 엄마, 아버지, 어머니.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사이가 좋은 기억이 없던 나의 부모님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선택하셨다.


정리할 것도 나눠가질 것도 없는 결별이었다.


이미 두 분은 오래전부터 별거를 하셨고 서류상으로 남은 부부였으며 이따금씩 나에 대한 행사들 이를테면 상견례 결혼식 등등에서 부모로서 만날 뿐이었기에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혼자 계시는 것에 대한 걱정이 늘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몇 년이 지나 두 분은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





어느 날 엄마는 남자 한 분을 모셔오더니 함께 지내기로 했노라며 선언하셨다.

엄마는 그런 분이었다. 

매사 미룸이 없고 숨기는 것이 없었다. 난 그저 알겠노라고 했다. 


어느 날은 아빠집에 갔더니 절대 아빠의 것일 리 없는 덧신이 하나 있었다.

키티 고양이가 그려진 분홍색 덧신이었다. 

난 아빠를 놀릴 심산으로 덧신을 꺼내놓으며 물었지만 아빠는 주웠노라며 황급히 말을 돌리더니 예뻐서 너 주려고 챙겨놨다고 했다.

"덧신을? 남신 던걸?"

되묻는 나에게 아빠는 싫으면 말라고 덧신을 치웠다. 나는 그 뒤로 아빠 혼자 지내는 집에 가는 걸 자제했다. 


몇 달이 지났고 아빠는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은... 아빠가..."

"응. 어떤 분이신데?"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아빠는 어떻게 알았느냐며 물었다.

"키티 덧신 때부터?"


다행히 두 분 다 무척 좋으신 분들이었고 내 아이들까지 마치 친손주처럼 예뻐하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모다야. 그 호칭을..."


아빠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이 혼자되고 나 하나 보고 사는데... 그 호칭이 좀 서운한 것 같더라."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는 아빠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 역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새아버지, 새어머니라고 부를까도 생각해 봤지만 남보기가 어떨까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사님이나 아저씨보다 왠지 더 거리가 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결국 내 호칭은 두 분이 재혼하시기 전 그대로 아저씨(의붓아버지), 와 여사님(의붓어머니)으로 굳어졌다.

한번 그렇게 되어버리고 나니 고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아빠... 나도 여사님이 좋은 분이고 너무 감사하고 그렇지만 어머니는 좀 힘든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엄마가 있잖아. 왠지 엄마한테 미안한 기분이 들고 그러네. 마음은 당연히 가족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호칭문제는 미안해."


아빠도 더 이상 말하지 않으셨다.


비슷한 이야기로 엄마도 어느 날 말을 꺼냈다. 


"너 '아저씨'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 니들이 그러니까 애들이 따라서 아저씨라고 부르잖아!"






어찌 보면 별것 아닌 문제겠지만 나에겐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고지식한 면도 가지고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서른이 훌쩍 넘어 마흔이 다된 나이에 나타난 새로운 부모님이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고민을 말했을 때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해. 세상에 어머니가 널렸는데. 시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르고 친구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르고 야. 나는  시장 가서 나물 살 때도 할머니들한테도 어머니라고 그래. 그게 어렵냐?"


어렵다...

친구말처럼 시어머니도 어머니고 친구어머니도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분들께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건 그런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족으로서 받아들이는 것과 부모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뭇 그 무게가 다르다.

나를 낳아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받았던 보살핌과 애정 그리고 희생.  나의 그 수많은 고민들과 기억을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존재.

내게는 그것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가족으로서 우리가 좀 더 가까이 더 많은 기억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언젠가 불러드릴 수 있게 될까?


작가의 이전글 소풍도시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