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좋아했던 "~에서 살아남기"라고 일명 살아남기 시리즈의 책들이 있었다. 정글에서, 지진에서, 미세먼지에서 등등..
그러나 마당에 잔디가 있는 집에서 살아남기는 애석하게도 책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이 글은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는 나의 삶의 일부이자, 나의 트라우마이자, 나의 해결하지 못한 과제이야기이며,
해피엔딩일지 세드엔딩일지 알 수 없는, 끝나지 않을 이야기가될 것이다.
이상향에 가까운 마당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는 전환점은,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봉긋 새순이 등장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황량하다 못해 지난겨울을 지나며 누렇게 길어 난 마당의 풀들 사이사이로 삐죽삐죽 고개를 내민 잔디를 발견한다면, 봄은 이미 시작이다.
어, 봄인가? 싶으면, 금세 토끼풀들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봄비가 내리면 여기저기 토끼풀에, 민들레에, 별꽃에, 어디서 날아와 뿌리를 내렸는지 이름도 모르는 잡초들이 무성해진다.
따스한봄을 만끽하다 조금 방심하면, 귀엽게 까까머리처럼 자라나야 할 마당 잔디들의 보금자리는 이방 잡초들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잡초를 뽑을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
마당에 잔디가 있는 우리 집, 나의 한숨과 고민의 시작이다. 아예 어린순일 때 잡초를 제거해 버려도깊이 내린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참을성 많고 끈기가 많은 잡초들은 더 강력한 친구들과 함께 다시 나타난다.
새벽 이슬이 지면을 적시고 땅이 마르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잡초를 뽑으면 보다 수월하게 뿌리까지 뽑을 수 있지만, 바쁜 아침 어디 그럴 여유가 있나.
흐린 눈을 하고 못 본 척 하루 이틀 지나면, 녀석들의 키는 무슨 힘인지 가느다란 줄기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키워내 발목 높이까지 다다른다. 멀리서 보면 들풀,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자연의 모습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잡초들의 향연에 불청객처럼 잔디들이 쭈그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처럼 정리와 정돈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무질서의 극치이다.
급한 마음에 우뚝 서 있는 잡초들 몇 개를 뽑아보지만, 줄기만 '똑' 잘릴 뿐, 뿌리는 어림도 없다. 최소 곡괭이로 캐내야 하리라.
물론,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처음 마당이 있는 이 집에 이사 왔을 때는, 제법 풍성한 잔디가 빼곡하게 마당을 채운 잡초 몇 개쯤은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아주 예쁜잔디마당이었다. 네 잎 클로버를 찾는 딸아이의 고사리 손이 귀여워, 잔디 뿌리 사이를 파고드는 토끼풀을 무시했고, 바닥으로 뻗어가는 이름 모를 잡초들이 잔디의 식생을 방해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 잔디를 깎다 보니 잔디를 드러내고 자리를 차지한 잡초들의 군집을 발견했다. 급한 마음에 가장 빠른 방법으로 제초제를 사서 뿌렸다.
적당량을 배합해서 뿌렸는데 며칠이 지나도 잎이 누렇게 변할 뿐 녀석들은 쌩쌩하다. 뿌리까지 깊숙이 스며들지 않았구나 싶어 조금 강력한 농도로 배합하여 뿌리까지 스며들도록 촉촉하게 제초제 마사지를 해주었다.
작렬하는 태양아래서 완전히 타 죽어가는 잡초들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니, 내 안의 사악한 본성이 잡초로 인해 각성을 했나 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하루정도 힘 없이 누워있던 잡초들은 다음날 새벽이슬과 함께 우뚝 일어났고 되려 잔디들이 누렇게 말라죽어있었다. 분명 잡초만 제거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제초제 농도가 너무 진했나? 그런데 잡초는 왜 멀쩡하지?
누렇게 말라죽어버린 처참한 잔디의 몰골은 균일하기라도 했던 마당의 밀도를 무너트렸다. 누가 봐도 땜빵이 가득한 못생긴 잡초마당이 되었다.잡초가 무성해질수록 땜빵은 더 선명해졌다. 이렇게 잡초에게 예쁜 마당을 내어줄 것인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찌는 듯한 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 작은 곡괭이를 들고, 심마니의 심정으로 잡초의 뿌리를 하나둘씩 캐냈다.
안녕, 제발 다시 만나지 말자.
잡초마저 뽑혀나간 마당은 너무 초라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작은 꽃화분들을 사다가 옮겨 심고, 나무를 심어봤지만 그래도 잡초마당은 초라하다.
그러다 작년 여름 마당을 온통 다 뒤엎는 하수도 대공사가 마을에 있었는데 그나마 남아있던 잔디마저 땅속 어딘가로 묻히면서, 마당은 말갛게 흙마당이 되었다. 초라하다 못해 초토화가 되었다. 너무 화가 났다. 이제 더는 못하겠다. 차라리 아파트로 이사를 가버려야지. 며칠을 씩씩거리다가 제풀에 지쳐, 긍궁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본다.
그냥 이대로 원초적 미학의 상태로 둘 것인가, 다시 화합과 조화의 미학으로 돌아갈 것인가.
내 성격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잔디를 구입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잔디를 하루에 100장씩, 3일을 땀 흘려 수고하여 손수 심었다. 내 인생에서 잔디를 심는 날이 있을 줄이야. 잔디를 심고 사이사이 흙을 뿌려주고, 물을 주고 틈나는 대로 밟아주어 잔디가 땅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애지중지 가꾼 잔디가 자리를 잡고 올봄에 초록빛으로 올라왔다. 뿌리도 잘 내렸고 기특하게도 알아서 옆으로 옆으로 식생 지를 확장해 나갔다.
그렇다고 잡초의 문제가 해결 됐느냐.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매일 바람 타고 여기저기서 날아와 소리 없이 커가는 잡초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가 내 결론이다. 자연과 초록이 주는 힘과 뿌듯함이 있기에 귀찮고 힘들지만, 내 몸과 마음을 다루듯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마당을 돌보기로 했다.
첫째,잔디사이에서 눈에 띄게 과잉성장하는 녀석들은(녀석들은 가만두면 작은 나무처럼 자란다) 초기에, 수시로, 뿌리까지, 부지런히 뽑아주되 잔디인 척 적당히 숨어 있는 잡초들은, 잔디의 식생과 영역을 심하게 침범하지 않는 한, 잔디와 조화를 이루며 살게 둔다.(공존과 화합)
둘째, 잔디가 발목 높이에이르기 전에 수시로 잔디를 깎아 관리한다. 마당을 주기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유지함으로써 뱀이나 들쥐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을 없애고, 들고양이들이 함부로 은신처로 삼는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는다.(독존과 전쟁)
현실 우리집 마당
마당이 있는 집을 산다는 건, 예쁜 잔디밭 정원을 유지한다는 것은 따로 왕도가 없는 것 같다. 아침저녁 부지런히 오다가다 잡초 하나라도 뽑아주고, 낙엽 긁어주고, 물 주고, 허물어진 경계 다시 돋우어주고.
내 흰머리 돌볼 시간은 없어도 잡초하나라도 뽑아주어야 다리 뻗고 편히 잠들리.
어젯밤부터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니 숨어 자라던 잡초들이 또 쑤욱 올라오겠지. 주말에 잡초 뽑고 예초기 돌리기 칼 예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