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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구로그 Nov 14. 2024

불망의 도약 - 3

부름에 관하여.

    이런 집착은 저를 꽤 오랫동안 괴롭혀왔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아도 길을 걸어가는 저의 모습을 그려내고 제 기억 속의 모습과 대조하고는 합니다. 저는 주변의 시선에 과하게 신경 쓰는 만큼 타인의 시선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기에, 결국 이상한 모순에 빠져버렸습니다. 남들의 순간에 남고 싶지만, 눈에 띄고 싶지 않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하며 그들이 저를 알아주길 원했습니다만, 혹여나 이상한 꼴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어딘가 서투른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을까 검토하는, 저의 몸에 대한 불편한 관조, 너무 오래 해 온 습관이라 이제는 고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오래전 기억의 잔재에서 타오른 거겠지요. 누군가한테 놀림이라도 받은 걸까요? 어쩌면 제가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사랑 없이 상처 입은 기억이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기에 커버린 지금은 과거의 것들을 쉽게 잊고 싶습니다. 타고 남은 재조차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누적된 후회와 수치가 결국 이런 저를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허물의 개복도 스스로 해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이 강제되기 마련이기에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한 번도 잊고 싶어서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다가오는 망각이 괘씸한 것은 이런 점입니다.

    

    똑똑한 사람은 잊는 것을 잘한다고 하죠. 인간에게 주어진 망각의 동물이라는 별칭처럼, 기억해야 할 것을 골라 모으고 버리고 싶은 것은 버리는 아찔한 주체성의 향수는 지적 생물체라는 명제에 가깝기에 가능한가 봅니다. 저는 잊힐 사람인가요, 잊을 사람인가요. 저는 그저 불망의 짐승인가 봅니다. 


    언제쯤 스스로 쌓인 허물을 긁어낼 수 있는 건가요? 저는 언제쯤 가벼운 몸이 되어 불러 올라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저는 가장 나중의 순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막연한 공포 앞에 저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죽음에 다가가는 것은 저의 육신과 정신임에, 그 순간만큼은 인과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큰 욕심은 아니니까요. 


    종점을 알면서도 그동안 유한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이 과정에 저의 존재는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잊히는 것도 두렵지만, 잊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려움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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