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선생님에게 배우는 아들이 많이 부러운 밤
수육과 홍어를 김치에 싸서 먹으면 그 유명한 삼합이 된다. 이처럼 음식에도 잘 맞는 음식의 궁합,조합을 따지는 것이 유행이 되어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음식을 '꿀조합' 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함께 먹기를 권한다. 이 분위기에 편승해 이 책이 '어린 시절,'이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서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맡겨진 소녀>와 꿀조합이라고 감히 권해본다. 삼합으로까진 몰라도 '꿀조합'으로는 모자람이 없다.
우연히 이 조합을 완성하게 된 것은 아들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알림장용도로 사용되는 어플에서 막내아들의 선생님이 이 책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의 일생을 가르는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대단하고 거창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아주 사소한 것들이 삶의 방식을 가르고 새로운 길을 내어준다는 메시지를 간결하고 짧은 소설로 표현한 클레어 키건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궁금해하며 이어서 <맡겨진 소녀>를 열심히 읽던 때였다. 어린이에게 어른은 이렇게 세상을 경험하는 커다란 창이며 거울이란 것을 연필로 줄 그으며 확인하던 시간. 그때, 우연히 막내의 알림장에서 툭 튀어나와 내 앞에 놓인 책.
유머가 담겨있을 것 같은 표지에 막내의 엉뚱함도 들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책을 펼친 첫 장부터 예상치 못한 진지함에 눈물버튼이 눌러졌다.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아는 것이 저의 큰 영광입니다."라니... 이 책의 켠 켠을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야기, 그 어린이에게 바치는 진심의 인사였다. 머리글부터 이러면 어쩌자는 건데. 왈칵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집어넣고 한 장 두 장을 넘기며 혼자 큭큭대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어쩔 수 없이 휴지를 놓고 읽었고 마지막에는 눌러진 눈물버튼을 다시 돌려놓을 시도조차 못하고 그냥 시원하게 울어버렸다.
왜?
이유를 생각해 보고 꼬리에 꼬리를 찾아가는 생각을 즐겨하는 나는 왜 이렇게 울고 말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에 대한 존중은 당연시하면서도 그 대상이 어린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순간 '아차'하고 놀랐던가 보다. 게다가 내가 '어린이'었던 지난 시간을 떠올렸을 때 존중받지 못했던 시간이 울컥 떠올라 아팠으려나. 내 소중한 아이들을 내가 똑같이 그렇게 무심히 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자책감까지.
어린이를 기다려주라는 대목에서는 어린 시절 내내 재촉받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빨리 해야 하고 잘해야 했던 시간.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 같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을 넘어뜨리는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나눔'의 정서. '착하다'는 말로 정의되어버릴까 불안한 아이들에게 사실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을 당연시할 수 있도록(갑을의 형태가 아니라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상호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런 대접을 해주려는 작가의 노력이 담긴 크고 작은 행동과 말들에서 나의 내면아이가 빼꼼 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그래 나도 그 말, 그 대접. 듣고 싶고 받고 싶었어!" 하고.
어린이는 미숙하고 모자란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조금은 억울하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세상에 나왔어야 하는 존재. 태어난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자라는 존재이다. 매일 허물을 벗는 번데기처럼 자신의 세계를 새로운 피로, 살로 채워가는 존재이다. 아무래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가족과 공유하는 환경과 시간의 흐름이 '어린이라는 세계'의 가장 큰 구성물질이 되겠지. 어린이가 그 속에서 보고 듣고 먹고 만지고 숨 쉬며 취사선택한 것들이 각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개성 있게 구축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마치 변신로봇이 착착 음향효과에 맞춰 변신하는 것처럼 정중함, 반듯함, 깨끗함, 명석함 등의 요소를 철커덕 치잉 붙이며 성장해 멋진 어른이가 되려는 어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어린이가 커가는 것은 로봇이 변신하는 것처럼 체계적인 순서와 칼로 재단한 것 같은 깔끔한 요소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
상상 속 멋진 변신로봇처럼 정중함, 반듯함, 깨끗함, 명석함을 조합한 어른이 되지 못하고 조급함과 어설픈 자본주의, 차갑지 못한 이성과 때론 너무 과열되는 감성을 지닌 조악한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엉엉 울면서 결심한다. 오즈의 마법사를 읽었던 나라고! 내가 가진 것들의 장점에 더 집중하자. 그리고 나의 장점 중 가장 큰 것이 내 잘못의 인정과 유연하게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실천력이 되도록 하자고. 착한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기품 있는 착한 어른이가 되자고.
이런 좋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책을 읽는 선생님에게 배우는 막내가 한없이 부러운 밤이다.
(막내 선생님의 책 후기도 가져오고 싶지만 허락을 맡고 퍼오도록 하겠습니다. ^^)
이 부분을 읽으며 오열했다. 생계를 위해 철저히 돈을 받으며 수업을 하지만 결국엔 제자들에게 또 넘치는 열정과 애정으로 나중엔 결단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애정을 퍼부어왔던 나이기에. 아마 레슨을 오랜동안 해 왔던 선생님들이시라면 백분 이 마음을 알고 공감하실 듯. 이제 돈만큼만 해야지 하고 마음먹어보지만 어디 그게 내 맘대로 되던가. 또 만나게 될 어떤 제자에게 돈따위는 댈 수도 없이 애정을 퍼붓겠지. 기억하자 그 애정이 나의 아이들을 향한 애정을 넘지는 말자고. 나중에 내 아이보다 더 애틋하게 아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그게 참 미어지게 아프고 내 아이에게 미안해지더라.
https://youtu.be/uUX6TcG8pJY?si=30rXjOJCtIMI_XgC
한참 내면 아이에 대해 고민하고 예술가들의 어린시절을 더듬으며 나의 어린시절과 짝맞추며 고민했던 시간들을 녹여 만들었던 강연과 음악.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 그리고 상처받은 어린시절을 가진 어른이들에게 주고 싶은 노래.
글 김혜정
예술인문학자/플루티스트/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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