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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 Jun 26. 2023

사랑스러운 계절의 입덧

모든 임산부 힘내세요.

  사랑스러운 계절 여름이 왔다. 여름의 첫 신호로 자두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 배송을 책임지겠다는 보라색 앱의 제철 과일 카테고리에서 귀여운 위엄을 뽐내는 너희들. 발그레한 붉은색과 설익은 부분의 연두색이 뒤섞인 동글동글한 자두를 보고 있자니 어느새 혀끝엔 침이 고인다. 의도하지 않아도 달콤함과 새콤함을 상상으로 느껴버렸다.



  이 귀여운 자두가 나에게는 고마운 과일이다. 러브가 나의 뱃속에 있는 동안 나는 줄곧 입덧에 시달렸다. 하루 종일 물 딱 한 모금만 겨우 마실 수 있었다. 임신 기간 동안 나의 몸무게는 인생에서 다시 없을 45kg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는 울렁울렁한 그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겠지만, 어떤 경험은 평생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걸 알았다. 입덧으로 인해 밤잠을 이루기도 힘들었기에 밤새도록 뜬 눈으로 날을 샜다. 끝날 줄 모르는 입덧에 지치고 지칠 때까지 깨어있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쓰러지듯 잠드는 것이 나의 임신 기간이었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니 인생에서 최대로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 고통으로 무한대로 피어나야 할 모성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출산 전날까지 디클렉틴 입덧약을 복용해야 했으니 나는 임신 체질이 전혀 아님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모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먹지 못해서 뱃속의 러브에게 영양분이 가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다. 다행히 러브는 나의 걱정과는 달리 내 뼛속의 영양분까지 쭉쭉 가져가고 있었다. 임산부가 못먹어도 아이는 잘 큰다는 것을 증명했으니 입덧이 심한 임산부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런 이유로 임신 기간에는 친정에서 지냈다.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 쓰러져 가지만 엄마가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그렇게 만났던 여름, 엄마의 팔짱을 끼고 시장을 걷던 중 과일가게 빨간 바구니에 옹기종기 담긴 붉은 자두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새콤달콤한 맛을 상상하니 자두를 먹어봐야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길로 집에가 자두에 도전했는데. 우와, 내 몸이 자두는 받아들여버렸다. 나는 귀여운 모든 것에 마음을 내주는 성격인데, 자두의 귀여움이 한몫한 것만 같았다. 한 박스, 또 한 박스. 나는 자두를 격파하듯 먹기 시작했다. 입덧을 할지라도 유일하게 입맛을 당기게 하는 자두를 먹고 또 먹었다. 수 많은 자두를 먹으며 러브가 딸임을 직감하기도 했는데, 정말 딸이 태어났다. 이제 와서 찾아보건대, 자두는 특유의 신맛으로 임산부의 입덧을 완화해주고,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물을 마시기 어려운 임산부에게 수분 섭취를 도와준다고 한다.


  오늘 새벽 6월의 자두 한 박스가 도착했다. 귀여운 자두 무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오랜만이라며 딸은 잘 낳았냐고 웃어주는 것 같다.


 “응, 나도 반가워. 러브는 너무 잘 태어났어. 그 때 정말 고마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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