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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 Jun 21. 2023

여름날과 요가 수업

엄마의 취미

  여름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예약했던 요가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작은 가방에 베이비워터와 머리 끈을 넣은 뒤 집을 나섰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했던 서울숲 카페거리가 오늘 아침은 고요하다. 카페 거리를 쭉 걷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작은 건물 3층에 요가원이 보인다. 설레고도 차분한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 요가원에 도착하니 내가 제일 처음으로 도착했다. 적당한 뒷자리에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요가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몸을 풀어보며 사람들로 하나둘씩 채워지는 자리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선생님이 등장했다. 대충 묶은 긴 머리. 그녀는 단단하고 유연한 라인이 드러나는 얇고 부드러운 재질의 요가복을 입었다. 목소리는 차분하며 행동은 단아하다. 한 분야에 통달해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그녀의 등장은 요가 수업을 통틀어 제일 근사하게 느껴졌다. 수업이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나를 그녀에게 온전히 맡겨 보겠다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요가 수업이 시작되고 사람들의 모습은 진지했다. 어려운 자세에 중심이 흔들려 다소 위태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일지라도 아무도 웃지 않았다.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보이는 나무와 부슬부슬 고요하게 들려오는 빗소리, 진하게 퍼지는 인센스의 우디향은 몸의 긴장을 내려놓기에 충분했다. 여름이지만 비가 와서 약간 낮아진 기온 탓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 바람이 살결에 닿을 때 시원하게 느껴졌다. 꾸욱. 선생님이 내 몸을 지긋이 눌러주며 자세를 교정해 준다. 천천히 동작을 이어가 어려운 요가 자세를 취해본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자세를 해냈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란 혼자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온몸이 몽글한 땀으로 젖을 때, 요가실의 조명이 꺼진다는 것은 수업이 끝날 때가 됐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요가 매트에 누워 숨을 내쉬며 몸에 들어갔던 힘을 빼고 온몸을 이완시킨다. 눈을 감으니 그제야 잊고 있던 여름 빗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나마스떼"  

  

  다들 발개진 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헤어지는 인사를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이지만 "정말 잘하시던데요."라고 인사도 건네본다. 요가 매트를 깨끗하게 닦고, 내가 사용했던 도구도 조용히 정리한다. 요가복 위에 간단한 가디건을 걸치고 머리를 정돈한 뒤 요가원을 나오니 어느새 서울숲은 사람들로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었다.


  요가는 많은 말들을 생략한다. 요가 자세를 취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적인 몇 마디만을 할 뿐, 온 신경을 집중하여 중심을 잡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많은 말들이 섞이는 것보다 몰입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나중에 러브랑 꼭 같이 요가해야지.'


  나는 다시 아이 생각이 난다. 러브와 취미 한 가지 정도는 꼭 같이하고 싶으니까. 30개월도 안 된 러브의 지금이 그리울 것 같지만, 좀 더 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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