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영 Jun 27. 2023

어린 사랑, 한여름 밤의 꿈 같은 그런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절인연

  어린이집에서 딸아이와 같은 반인 남자아이가 딸 러브에게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그 남자아이는 아이들이 등원할 때 웬만해선 현관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러브가 등원할 때는 어느새 현관문에 쪼로록 나와 러브를 쳐다보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남자아이가 집에 가서 러브 얘기를 자주 해서 아들 사랑을 뺏긴 것 같다는 그 아이 엄마의 웃음 섞인 하소연을 나에게 살짝 전해 주신다. 이런 남자아이의 마음과는 달리 러브는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마다 내 뒤로 쏙 숨어 들어가지 않겠다고 실랑이 하는 중이다.


  "은호야, 러브 보고 얼른 들어오라고 해줄래?"

  "러브야~얼른 들어와~"


  이 귀여운 장면을 보니 나는 순식간에 웃어버렸다. 아 , 왜 이렇게 사무치게 부러울까?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본다. 고등학생 때 나를 무지하게 따라다닌 오빠가 있었지. 그 오빠 친구도 나중에 나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하지만 내 친구가 그 오빠를 좋아했기에 나는 의리를 선택했었지, 그리고... 딸 러브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러브야, 5월의 따뜻한 미소를 가진 열아홉 살이 된 그녀와 7월의 정열을 가진 스무 살의 그가 있었단다. 그 둘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버리고 연인이 된단다. 서로를 눈앞에서 보지 못하는 시간이 애가 타 전화 통화로, 문자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단다. 그는 눈에 띄는 덩치와는 다르게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어. 그가 앞으로 어떤 연인이 되어줄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느끼게 하는 사랑스러운 타입이었어. 그녀는 옷을 좋아해서 항상 옷차림에 신경을 썼어. 그의 말에는 수줍게 웃어주는 편이었지. 그녀는 빠른 연생이란 이유로 열여덟 살에 수능을 봤지만, 더 좋은 길을 가고 싶어서 재수생의 길을 선택해. 그녀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택한 힘듦을 그의 격려로 버티고, 그런 그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어.  

  

  7월의 정열은 너무 강해서일까. 갓 대학생이 된 그에게 고백하는 여학생들이 많아지게 돼. 조금씩 길어지는 연락의 부재에 그녀는 조금 걱정이 돼. 하지만 그녀는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해. 자존심도 충분한 그녀였어. 그녀가 이별을 택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단다. 그녀는 그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후에도 책상에 앉아 공부하려고 해. 하지만 그녀는 고작 열아홉살인 걸. 책을 펴보지만, 펜을 손에 쥘 수는 없었을 거야. 결국 눈물을 터트려 몇 시간이고 울어버리고 말았어. 그녀는 그를 잊고 또 잊었어. 잊어야만 했지. 그리고 일년이 지나 예쁜 코랄 빛으로 물든 스무 살 대학생이 된단다. 대학생이 되서도 자기 계발에 능한 그녀였어. 그녀는 어느 정도 인기도 생겼단다. 동시에 네 명의 남학생에게 고백받은 건 부드러운 긴 생머리와 천성적인 말투에서 오는 애교도 있었기 때문일거야.  

  

  러브야, 그녀는 더 이상 그가 그립지 않았어. 그녀의 모든 모습을 한 없이 사랑해 주는 멋진 남자친구가 생겨서만은 아닐 거야. 그녀는 이제는 예전의 그가 돼버린 그 사람을 친한 친구들 모임에서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단다. 그는 이전과 달라진 자신감 넘치는 그녀가 다시 궁금해졌어. 그렇지만 말이야, 그녀는 그와 이별할 당시 이미 알고 있었어. 그녀가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한 것이 아니라, 그녀와의 이별을 기다리고 있었을 그였다는 걸. 이제 그는 더 이상 그녀의 마음을 흔들 수 없었단다. 다시 그를 좋아하기에 이미 그녀는 자신을 향한 애정으로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 버렸거든. 그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시절 인연인 거야.  


  딸아이를 바라보노라면 언젠가 이 아이에게도 사랑의 설렘이나 고통 같은 것이 찾아오리라는 생각이 들어, 내 마음이 다 뜨거워진다. 그 시기가 오면 나는 딸아이의 부끄러움이나 생채기 난 마음들을 예민하게 감지해서 사랑의 얘기들을 허심탄회하게 같이 나눌 수 있을까. 엄마는 언제나 모든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싶은데 사랑만큼은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때가 되면 엄마에게 얘기해줘, 언제나 네 옆에 있을거야.

작가의 이전글 사랑스러운 계절의 입덧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