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국주의 서사 의학-
녹색의학은 여성이 남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의학이다: 『이브의 몸』
8.
“쓸개즙 조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에스트로젠과 프로게스테론은 모두 쓸개 콜레스테롤 함량을 높인다. 프로게스테론은 또한 쓸개 수축을 억제해 쓸개즙을 십이지장으로 분비하는 속도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높은 월경 전이나 임신 기간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쓸개 질환에 걸리는 빈도가 높다.···
쓸개즙 조성은 월경주기와 임신에 따라 변한다. 쓸개즙 분해물 일부는 여성 결장암 발병 위험성을 높인다. 그리고 아마도 그 빈도가 여성에게서 2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궤양결장염이나 국소장염 또는 크론병과 같은 염증성 장 질환도 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124쪽)
···쓸개 절제술이 결장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쓸개를 제거함으로써 쓸개즙이 계속 장으로 흘러들어 결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133쪽)
우울장애로 숙의치료를 했던 여성이 인사차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쓸개 제거 수술을 받기로 예약했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했다. 나는 정색하고 그 내용을 소상하게 물었다. 담즙 이야기를 핵심으로 결장암 이야기까지 하면서 예약 취소하고 치료 계획을 전면 재조정하라 일러주었다.
백색의학 판단력은 여성 몸이 남성과 다른 점에 유의하지 않는다. 백색의학 주의력은 몸과 건강 전체에 미치지 못한다. 전공 테두리 안에 갇혀서 요법 포르노를 매력 포인트로 삼는다. 외과의사는 사람 몸에 칼 대는 일에 기탄없다. 내과의사는 조폭보다 더 잔혹한 범죄 집단인 제국 제약회사가 만들어내는 백색화학합성물질 먹이는 일에 기탄없다.
남성과 다른 조성, 특히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쓸개즙이 여성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앞으로 좀 더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담석증, 과민성장증후군, 기능성 장 장애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불안·우울을 포함한 정신질환과도 상호작용함에 틀림없다.
극동아시아 전통 의학은 쓸개를 중정(中正) 기관이라 인식했다. 단순히 쓸개즙을 담아두는 주머니가 아니었다. 우리말 ‘쓸개 빠진 인간’이란 표현은 지조, 바른 판단, 최후 결단과 같은 정신 작용을 쓸개에 귀속시킨 사유 반향이다. 이는 단순한 비과학적 은유가 아니다. 위장관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속속 밝혀지고 있거니와, 머지않아 쓸개즙이 담은 신비, 특히 여성 마음 복잡한 결과 미묘한 겹에 닿아 있는 메커니즘이 드러나리라 본다.
쓸개 질환에 여성이 취약하다는 사실은 모름지기 사회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백색문명 가부장체제가 초래한 성차별은 수천 년 동안 여성을 ‘쓸개 빠진 인간’으로 묶어 놓지 않았던가. 녹색의학은 와신상담 세월이 발효시킨 성 인지 의학이다. 주어진 문제에서 정답 찾기만 하지는 않는다. 문제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