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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l 22.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92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56


          

서릿개(반포천)에서 너벌섬(여의도)까지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비는 오시기 마련이다. 기상정보를 보고 일단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여느 때보다 느지막이는 일어났으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요일 할 일을 하다가 하늘을 본다. 이슬비이긴 해도 여전히 비가 오신다. 문득 생각이 바뀐다. 비는 하늘 물이 아닌가. 하늘 물이 오신다고 물 모심 계획을 놓는 일은 당최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얼른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하늘 물맞이부터 한다. 한 생각 돌이킴에 감사하며 이내 길을 떠난다. 


하늘 물맞이

    

당분간 특별한 팡이실이 소식 없으면 경강(京江), 그러니까 서울 한강으로 가련다. 가장 익숙한 진입로인 서릿개(반포천)로 향한다. 서릿개는 우면산 동쪽 끝 골짜기에서 발원해 양재동 서초동을 거치며 북으로 흐르다 급격히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도산 발치, 서울성모병원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사이를 지나 한강과 만나서 두물머리를 이룬다. 그 직전 사당천(방배천)과 만나 작은 두물머리를 이루지만 사당천이 복개 상태라 풍경이 영 사납다.  


사당-반포 두물머리


복원 반포천 발원지

   

실은 반포천도 대부분 복개 상태로 숨죽여 흐르다가 서울성모병원 사거리쯤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투른 복원 행정 결과는 그대로 살풍경이다. 정화 장치가 있으나 물은 심히 아프다. 병든 냄새를 풍기고 매운 기운을 쏟아낸다. 그 자욱한 슬픔에 배어들며 연신 속죄의 말을 전한다. 제대로 흐르지 못해 신음조차 낼 수 없는 곳을 지날 때는 대신 “아프다, 아프다”라고 말한다. 이런 풍경 가로질러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건강할까.   


멈추어 숨죽이는 반포천

  

마침내 두물머리. 드넓은 한강에 몸을 푸니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한강 본류도 아프긴 마찬가지다. 물이 너르고 깊은 만큼 병도 너르고 깊다. 강변 따라 굉음을 내며 내달리는 올림픽대로 교각 아래로 걷노라면 맹렬한 분노가 솟구친다. 제국의 부역 권력이 어떻게 물을 함부로 대하고 인간과 이간시켰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물과 풀은 죽을힘 다해 자신과 이웃을 정화하며 살아가는데 인간은 거기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소주 마신다.   

 

반포천-경강 두물머리


낚싯대


허리가 또 조금씩 쑤신다. 물이 아픈데 사람-물인들 온전하랴. 가끔 쉬면서 너벌섬(여의도)에 다다른다. 샛강 따라 얼마쯤 걷다가 돌이켜 다시 큰 물가로 간다. 올림픽대로가 고래고래 내지르는 소리를 견디지 못해서다. 잘 가꾸어진 산책로를 이탈해 무조건 물 가까운 좁은 길을 따라간다. 무성한 버드나무숲 속으로 들어가 드디어 한강 물에 손을 담근다. 아프디아픈 몸을 이때만은 말갛게 드러내는 물을 모시고 나는 그 고마움이 서러워 울고 또 운다. 


너벌섬 물맞이

     

더는 가지 못한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다.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서울 산에 갖춘 예의를 물에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강 전체는 물론 지천, 그 지천의 지천까지 갈래갈래 걸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 물길을 덮어 놓았다는 데 있다. 그 물길을 어떻게 찾을까. 복원조차 이명박식 토건이 많은데 이런 가짜 복원은 진짜 복원을 영구히 가로막지 않을까. 산에서 감지할 수 없었던 아득함과 절망이 밀어닥친다. 이래서 물이 물이구나. 

     

흔히 다발성 장기부전 증후군(MODS)으로 번역되는 질병이 있다. 전체 장기(기관)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기능을 상실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상황을 가리킨다. 이 치명적 생태 붕괴는 대부분 신장(kidney)에서 출발한다. 서구의학은 그 원인과 기전을 밝힐 수 없지만, 범주 인류학에서 볼 때 이치는 자명하다. 인간 생태계 근원이 물이고, 신장은 바로 그 물을 소통시키는 팡이실이 허브기 때문이다. 지구 신장은 바다다; 강이다; 시내다; 샘이다.  

 

신음하는 물

 

그렇다. 지구는 지금 MODS로 달려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이 묵시록적 카이로스에서 물 몸 아픈 냄새를 맡고 매운 죽음 기운을 느끼는 나는 어찌 살아야 하는가. 절대 근원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서 나는 준비해 간 고운 물 한줄기를 한강에 붓는다. 또 한 번. 다시 또 한 번. 이 두물머리에서 나는 내 본성 본디 물로 돌아간다.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다. 찰나마다 범주 인류학적 인류로 체현할 따름이다. 내 글은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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