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70
연신내를 복권하다
경강 지천을 살펴보다가 지식이 짧아 몇 가지 실수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연신내다. 현재 공식 명칭은 불광천인데, 불광동 옛사람들은 연신내라고 불렀다. 한자로는 연서천(延曙川)이라 했다. 증산동에서는 까치내라고도 불렀다. 연신내는 삼각산(북한산) 선림봉에서 발원해 불광로18길-연서로34길-연서로-증산로-성중길-월드컵로를 따라 흐르다가 성산교 직전에 홍제천과 합류해 경강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연신내는 홍제천 지천, 경강 제2차 지천이다. 바로 여기서 내 실수가 빚어진다.
지도상 형태와 경강 지천이 열 개라는 피상적 자료-여기에는 불광천이 없다-에 의존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불광천, 그러니까 연신내를 홍제천 지천으로 파악하고 열 지천 걷기에서 제외했다. 난지도 걷기 끄트머리에서 조금 걸은 일로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다가 자료를 더 살피는 과정에서 경강 지천이 둘 더 있으며 연신내가 본디 홍제천 지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일제가 성산1동과 망원동을 돌아 굽이치던 홍제천을 성산과 새터산 사이로 흐르도록 직강화하는 바람에 연신내가 홍제천 지천이 돼버렸다는 얘기다. 나만이라도 연신내를 경강 지천으로 복권하기로 작정했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려 연신내로 들어간다. 전에 본 그 풍경 그대로다. 물은 신음조차 아끼며 천천히 흘러간다. 9월 중순인데 한여름처럼 뜨거운 날씨에 일부러 드문드문 나무를 심어놓은 듯한 둔치는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만 아니라면 한증막과 다름없다. 양산 아래 눈길로 마주친 딴 세상 생명체 같은 중대백로나 앙증맞은 애기나팔꽃에 몰입하는 순간들 덕에 물길이 끝나는 응암역에 일찌거니 다다랐다. 여기도 역시 청계천식 토건이 흥건하게 펼쳐져 있다. 이젠 굳은 패턴인가?
복개된 길을 따라간다. 뭔가 단서를 찾아보지만 어림없다. 대로 한가운데 아스팔트 바닥에 수도 관련 맨홀 뚜껑을 발견했을 때, 아! 저 밑에 죽임당한 연신내가 있겠지, 할 따름이다. 땡볕을 작은 양산이 걸러내는 사이 연신내역에 다다른다. 갑자기 삼각산 한 자락이 우뚝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저 봉우리 아래 어디서 연신내 첫 물길이 생겨났으리라. 지도에 나온 대로 연신내 줄기는 선림봉 아랫자락을 소유한 한국기독교수양관 경내에 복개 분기점이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거침없이 그 사유지를 물길 살펴 가로지른다. 마침내 인적 드문 골짜기 연신내 손 타지 않은 물을 발견한다.
거기가 마지막이다. 북한산관리사무소가 쳐놓은 철조망이 더 이상 접근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나는 철조망 바깥 물에 앉아 씻고 떠 마시고 소리 듣는다. 그러다 홀연, 작은 내 몸 하나가 빠져나갈 만한 틈을 본다. 서슴없이 그리 들어간다. 돌과 돌을 더듬으며 발원지를 찾아 오른다. 기어이 찾아낸다. 지도상으로는 맞는데, 아니다. 바로 그 너머 참 발원지가 있다. 그러나 깎아지른 바위벽이 양쪽 물가를 지키고 있어 접근 불가다. 저만치 눈으로만 확인하고 돌아선다. 마침 천추가 신호한다, 그만!
됐다, 그만하면. 내가 다다라 눈과 귀, 그리고 가슴에 담은 거기가 바로 연신내 발원지고 내 지성소다. 도로 내려와 거리로 나선다. 명절 직전 거리는 북적거림과 한산함이 극을 이룬다. 가난이 드리워진 변두리는 괴괴하기까지 한데 국민 더 보듬겠다며 설치는 과대망상 중심은 훤화지성이 낭자하다. 내 물 여정은 한편으로는 인간을 내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들이는 역설 과정이다; 관용과 축출, 자비와 응징이 가차 없이 충돌하며 세계 진실을 추구한다; 거대 담론과 사소 일상이 갈마들며 시공을 엮어낸다. 애써 땀 냄새 거두고 작은 이야깃거리 준비해서 가족에게로 돌아갈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