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이 망국을 부른다> 끄트머리에 과대망상증이 유아기 마법 사고에 젖줄이 닿아 있으며, 정신 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병리라고 말했다. 마법 사고는 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전능“감”을 말한다. 커가는 동안 인과 이치를 터득하고 실패에 부딪히면서 그 생각이 깨진다. 깨지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사람은 자람이다. 생명 다하는 순간까지 자라야 사람이다.
자의든 타의든 자라지 않고 멈추면 사람이기도 멈춘다. 사람이 지니는 자람 본성은 나무에서 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라는 원조 생명이 바로 나무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오랫동안 오해해 왔다. 자라감과 커감을 같은 말이라고 무심코 생각해 버렸다. 무심코 몸속으로 들어간 잘못된 지식은 무서운 타성을 지니는 법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잘못임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가 그 타성에 벗어나게 된 계기가 어느날 찾아왔다. 작정하고 찾아다닌 일은 아닌데 정말 우연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나무 사진과 맞닥뜨렸다. 올드 티코라는 이름이 붙여진 노르웨이 가문비나무다. 스웨덴 국립공원 정상에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저 경이롭다는 생각만 하고 지나쳤다. 몇 번 더 그 나무 사진과 마주친 어느 순간 문득 의문 하나가 솟아올랐다.
“9,550살이라는데 왜 이렇게 키가 작지?”
기록에 따르면 4m 정도란다. 가문비나무는 교목으로서 보통 40m까지 자란다는데 이상하다. 아주 천천히 자라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뎌냈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뭔가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자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이 나무도 40m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높이 자랐다가 서서히 줄어들며 여기까지 왔나? 바로 그 순간 명백한 증거 하나가 벼락처럼 떠올랐다. 아, 그 녹보수.
에메랄드 나무라고도 하는 녹보수 한 그루가 한의원에 있다. 개원 때 선물 받은 나무인데 다음 달이면 15년째 살고 있다. 우리 경험으로 칠 때 엄청난 장수(!)목이다. 이 나무는 처음 왔을 때 내 키와 비슷했다. 나날이 커지더니 마침내 천장에 닿고도 남아, 가지가 휘어져 내려올 정도로 됐다. 그 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점점 줄어들어 다시 처음만 해졌다. 그렇구나.
모름지기 올드 티코도 그랬을 테다. 자기 깜냥을 생애에 맞추어 할 수 있는 만큼 크기를 조절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사람 또한 같다. 나도 군대 갈 때 잰 키에서 몇 cm 빠진 상태다. 육체만 그럴까. 정신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공부해 새로운 지식을 쌓아간다고 해서 지식량이 계속 커지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많이 잊을 테니까. 기억도, 논리도 길이가 짧아진다. 그렇구나.
이 현상은 분명 노화지만 맞은편 진실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식이 접힐 때 지혜가 펴짐으로써 우리는 현명한 노인이 된다. 늙어가면서 옛 습관 따라 지식을 시전해 자랑삼으면 안 된다. 줄어드는 지식을 지혜로 메우면서 겸허하게 내 목숨과 삶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 젊은이한테 자리를 내줘야 한다. 어른이 지켜야 할 지상 예의다. 그러나 나부터 무례하다.
곡진히 반성한다. 예컨대 나이 들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듯 참정권도 반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80 넘은 늙은이가 18살 아이보다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증거가 어디 있나. 오히려 그 늙은이들이 공동체를 말아먹는 현실을 지겹게도 겪지 않았던가. 자라는 일은 크는 일과 다르다. 백년을 살아도 일제 부역 지식인 김형석과 같다면 대체 무슨 소용이랴. 부디 겸허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