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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 강 Nov 30. 2023

[에세이 #1] 고흥에서

전남출생이지만 여차저차한 이유로 처음 오는 고을이다. 언젠가 작고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에서 수많은 나라의 관광객이 찾는 미국 서부의 그랜드캐년을 정작 그는 가보지 못하고 있다고 소회하는 걸 본적이 있다고등학교 시절부터 신부라는 성직자를 업으로 정해놓은 친구가 새로 부임한 곳이라고 해서 겸사겸사 다녀왔다무엇이 그를 어릴때 부터 삶을 규정해 버렸을까가끔식 만나는 그의 모습은 흔들림 없이 항상 그 자리였다한번 가기도 껄끄러워하는 군대를 제비뽑기에 뽑혔다는 이유로 군종신부가 되어 두번 다녀올때도 그렇고 해외사목이라는 보직으로 잠시 한국을 떠나있을때도 그랬다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만난 그의 모습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수십년이 만든 성직자의 권위때문일까도통 느끼지 못하던 거리감이 생기는 것이다그것도 잠시 대충 넘겨 버렸다.자유로운 듯하지만 성직자가 안고가야하는 책임감이나 의무감의 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던 어느날 막걸리를 한잔 걸친 그의 독백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89년 모인사의 통일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이야기다.난 순간적으로 직감했다.이건 트라우마일 것이다.본인이 평생 하고자 했던 사제의 길을 이 사건으로 다시는 못할 수 도 있다는 극한의  스트레스는 미래의 그의 입을 다물게 했으리라일상의 대화외 깊은 의중이나 의견은 철저히 외면했던 그는 추측컨대 어릴때 부터 지켜온 나름의 양심에 온갖 오물이 뒤범벅 되버린 신학생시절에 이미 미래의 희망을 접어버린 것 같다이처럼 아직 주변엔 아직 해소되지 않은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흥은 생각했던 곳보다 훨씬 큰 시골이었다.고흥 녹동항에서의 12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오랜만에 신부인 친구가 집전하는 미사를 치르며 미사중간에 신도들을 향한 강론은 전라도 사투리 물씬 풍기는 시인의 시한수를 조용히 들려주는 것이었고 생태환경을 지키기 위한 신도들의 작은 실천을 공유하는 생태분과장의 마무리일성이 있었다.그렇다.친구는 항상 자신에게 허락된 소임지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소록도를 바라보며 주고 받는 막걸리자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동에 번쩍 서에 번쩍 고흥녹동의 홍반장이라 불리는 신자이야기,소문난 '엉터리김밥집' 사장님이 성당신도라는 이야기 등 사람사는 이야기가 오가고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이보게 라우렌시오.난 이제야 편하게 사는 법을 알게 되었네.나도 성직자이면서도 인간이 아니던가그것을 깨닫기 까지 시간이 좀 걸렸네 그려.하하하” 그의 웃음에서 난 그 옛날 어릴적 느꼈던 과거의 감성이 다시 돌와왔음을 느낀다그의 편안한 얼굴에 카타스시스를 경험하는 듯 하다.이제 우리가 남은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언의 미소가 번진다녀석과 소록도 옆으로 지는 석양을 어깨동무를 하고 바라본다이 태양은 매일 이 자리로 넘어가듯이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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