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스님의 ‘기본을 다시 잡아야겠다'를 읽고
서점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계획에 없던 책을 접하게 되는 설 레임 이랄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걷다가 새로 생긴 도서관이 보여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묵혀둔 독서예정목록을 꺼내 검색을 해본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책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법인스님이 쓰신 글모음이다. 이력을 보니 실상사에 지내고 계신다. 친숙한 절이다. 젊었을 적 지인이 실상사에 머물고 있어 잠시 다녀갔던 기억이 소환된다. 재미있다. 책장을 펼치니 ‘들어가며’라는 화두로 시작하는 글이 있다. 도법스님이다. 지인의 은사스님이기도 해서 곁에서 몇 번 지켜본 적이 있다. 책 속의 실상사와 그 주변의 일상이 과거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 실상사의 새벽이 떠오른다.
실상사가 여느 절과 좀 다른 것은 지리적 위치이다. 논이 즐비한 넓은 평야지대에 있다. 그 해 여름 저녁 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달빛이 내어주는 논길을 따라 실상사를 들어가다 바퀴가 논에 빠졌다. 건질 엄두를 못 내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손님방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예불소리에 잠에서 깨어 절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스님한분이 어제 사고의 현장으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내가 도둑질하다 들킨 것도 아닌데 가슴이 철렁거렸다. ‘지인에게 알려야 하나’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스님의 뒤를 따라 계획에 없던 산책의 동행자가 되었다. 가까이서 뵈니 도법스님이다. 합장을 하고 저물어가는 달을 조마조마 바라보던 그때 도법스님의 탄성이 들렸다.
“ 어허, 어젯밤 JM스님이 달빛에 취해 달구지를 깜박했구나 ”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움이 스님에게는 산사의 유머로 승화되는 해학이 놀라웠다. 그 날 아침은 처사들의 부산한 움직함과 고함소리로 시끌시끌하였다. 그렇게 달구지는 끌려 나왔다.
실상사의 소소한 일상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전하는 법인스님의 이야기가 나태해진 누군가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급기야 꿈틀거리던 글쓰기세포를 건드렸다. 그리고 에너지가 막 생겨나려던 참이다. 법인스님의 반려견 다둥이를 보러 그곳으로 발걸음을 떼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