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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 강 Nov 30. 2023

[에세이 #3] 어느 부랑자와의 대화

내가 일하는 언주로 사무실 근처에는 걸어서 2~3분 거리에 조그만 쉼터가 있다.

앉을만한 조그마한 벤치 몇 개와 작자미상의 조각상과 나무도 있다가끔 하늘이 보고 싶다거나

뭔가 생각이 넘칠 때 커피 한잔을 들고 잠시 머무는 곳이다그곳엔 나와 같은 목적으로 서성이는 

이도 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배달라이더를 직업으로 하는 50대 남자가 음악을 들으며 쉬어

가기도 한다.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부랑자 한분이 계셨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분이었는데

며칠을 감지 않았는지 알 수 없는 머리모양새와 바뀌지 않는 옷차림으로 보아 노숙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가끔 그녀는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담배 한 개비를 빌려 불을 붙이고는

피우지는 않고 초점 없는 눈으로 전방만 응시하며 앉아 있곤 했다내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그리고 2~3시간 뒤에도 또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사무실에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도

가끔 화두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추워지기 시작한 10월의 어느 날도 발걸음을 쉼터로 돌렸는데 쌀쌀함 때문인지 나와 그녀만 

덩그러니 함께 있는 상황이 되었다애써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다른 곳을 응시하며

보내고 있는 그때 약 10여 미터 후방에서 발걸음을 움직이더니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순간 나는 예기치 않은 사태에 당황했다그녀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입가에는 무엇을 먹었는지 주황색 양념찌꺼기가 잔뜩 묻었으며 무척 두터운 

때 이른 겨울패딩에 오랜 때가 잔뜩 범벅된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다는 말인가나에게는 그녀가 원하는 담배가 없는데…’

나는 그때 전자담배를 물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저기 죄송한데……”

말씀하세요…” 나에게 무슨 용건이 있느냐는 듯 물었다.

저기 도움을…. 좀 주실 수는 없을까요…” 

이분이 말하는 도움이 무엇일까돈을 달라는 걸까차비가 필요한가?

'나의 호주머니에는 만 원짜리 한 장 달랑 있는데’ 여러 가지 상상 속에서 난 물었다.

돈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 그건 아니고요…………”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이 상황은 뭐지왜 나한테……’

난 다시 물었다.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 건지………“

또다시 정적이 흘러가고 있었다. “……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되뇌고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갔다.

그녀가 필요한 도움은 무엇이었을까도움이 필요하긴 했을까나에게 이런 도움을 요청한 건

기억할까그냥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출퇴근하는 강남역 근처에도 그녀와 비슷한 매일같이 지나치게 되는 또 다른 노숙자가 

확실한 몇 명이 있다.(거의 하루 내내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하다먹을 것을 두고 가는 분, 지갑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 쥐어주는 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측은지심보다는 그들이 처한 현재를 만든 배경은 얼마나 힘든 것이

었을까그들에게도 이 시간은 매우 귀중 할 텐데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

생각한 적이 있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갑자기 훅 들어와 말을 건넨 오늘 그녀와의 대화는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겼다언젠가 또다시 전자담배를 물고 있는 나에게 그녀와 다가와 무언가 모를

도움을 요청한다면 세상과 연결하고자 하는 그녀의 바람이라 여기고 경계심을 잠시 내려둔 채 

가만히 서서 들어보리라. 

<유채색> 삭막한 공허 속에서도 유채색이 피어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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