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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기 Nov 07. 2023

사라진 것들을 아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감나무 

    

외할아버지 댁 뒤란에는 10여 그루가 넘는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전부 단감나무였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단감이 알맞게 익었습니다. 할아버지 댁에서 딴 단감을 먹으면서 한 해가 저무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매년 단감을 먹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저는 연시보다 단감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지금까지 단감을 좋아하는 것은 외할아버지 댁 뒤란에 있던 감나무들 때문일 것입니다. 가을이 오면 따먹었던 단감들의 맛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외할아버지는 2019년 11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 집 댁에 갔던 때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단감나무에 단감이 무성히 달려 있었습니다. 단감 하나를 따먹으면서, ‘아, 이제는 더 이상 여기서 단감을 먹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습니다. 그리고 그 예견은 맞았습니다. 그해 이후에 외할아버지 댁 단감나무에서 단감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외할아버지 댁을 외삼촌이 물려받았고, 외삼촌은 오래 된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었습니다. 새집을 짓는 과정에서 집에 있던 나무들을 모두 베었습니다. 단감나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랫동안 집을 지켜왔던 단감나무들은 그 집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외할아버지 댁에 있던 단감나무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저는 단감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을이 오면 가끔 인터넷에서 단감을 시켜먹고는 합니다. 인터넷에서 시킨 단감은 맛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어쩐지 충분하지 않은 맛이 납니다. 

외할아버지 댁 단감나무에서 먹었던 단감의 맛은 여전히 기억 속에 있습니다. 조금 덜 익어서 떫은 맛이 났던 감도 있었고, 딱 맞게 익어서 아삭한 식감이 났던 감도 있었습니다. 조금 많이 익어서 연시에 가깝게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에 먹었던 수많은 단감의 맛이 여전히 제 기억 속에 있습니다. 그 맛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맛보았던 단감의 맛을 더 이상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 맛은 제 기억 한편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두 번 다시 완전히 똑같은 맛의 단감을 맛볼 수는 없습니다. 이미 그 시간이 지나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단감나무들이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대반열반경 

    

불교 경전 중에 『대반열반경 大般涅槃経, Mahāparinibbāna Sutta』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이 경전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는 과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제자 아난다에게 자신이 곧 죽는다고 말합니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부처님은 슬퍼하는 아난다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아난다여, 참으로 내가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간청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디가니까야』, 각묵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2006, 237.       

불교 경전을 읽다보면, 부처님이 꼰대(?)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슬퍼하고 있는 사람에게 슬퍼하지 마라, 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슬퍼하지 않게 될까요?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이별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러니 아난다의 슬픔은 그 자체로 긍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도 틀린 것은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인연이 닿는 순간에만 제 것입니다. 떠날 때가 되면 떠나기 마련이지요. 그것을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갈 때가 되면 가기 마련이지요. 그러니 그것이 무엇이든 곁에 있는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언제 떠날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사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사라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에 내 곁에서 사라지는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슬퍼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현재에 집중하면서 살면서, 지금 가진 것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지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요. 주어진 것들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


삶을 살아가다보면 많은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나갑니다. 변합니다. 달라집니다. 사라집니다. 무엇을 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간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어떤 순간들은 다시 되돌리고 싶습니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금 제 손 안에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다보면, 가끔씩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정말로 사라진 것일까요. 저는 그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외할아버지 댁에 있던 감나무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해에 따먹었던 감나무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제 기억의 한편에 남아 있고, 여전히 제 안에서 살아 있으니까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변화한 것일 뿐이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여러 모로 마음이 편한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사라지는 것들을 슬퍼하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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