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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Jul 10. 2024

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66)

2학년이지만 용돈 기입장을 씁니다

어린 시절 매주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오락실도 갔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이야 돈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었던 시절이지만 요즘은 또 그렇지도 않은가 보더라 아이의 친구들은 벌써부터 카드지갑을 목에 매고 다니거나 고학년들은 용돈을 받아 쓰고 버스카드를 충전해 버스를 타고 다니고 그런단다


나같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집은 아이에게 현금을 막 쥐어줄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카카오 계좌와 연동되어 있는 체크카드를 하나 손에 쥐어주었다 아이의 용돈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필요한 건 대부분 내가 주로 사주기 때문에 1학년때는 매주 1천 원 2학년때는 매주 2천 원씩 학년마다 1천 원씩 올려주기로 하고 특별하게 잘한 일이나 사건이 발생하면 용돈을 인상해 주는 조건으로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주변에선 일주일에 2천 원을 가지고 무엇을 하냐고 웃으시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 해도 매주 2천 원이 나온다는 것은 노동이 없음에도 돈을 받는 것 이기 때문에 엄청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군다나 꼭 필요한 건 용돈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아빠가 다 해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물론 좀 크면 용돈을 더 조정해야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공주 카드 줄 테니까 앞으로 용돈은 여기 카드에서 쓰면 돼요, 아빠랑 같이 마트랑 가서 어떻게 물건 샀는지 기억하지? 이 카드에는 돈이 엄청 들어있는 게 아니고 공주 용돈만큼만 들어있으니까 공주가 가지고 싶거나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이제 용돈 모아서 사던지 아니면 그냥 쓰던지는 공주가 생각 잘해서 써보도록 해요. 아빠가 매주 월요일에 용돈 넣어줄 거야."



카드를 건네며 용돈 기입장도 사서 같이 건네주었다 아이 옆에 앉아서 용돈 기입장 쓰는 법을 알려준다



열심히 작성 중인 용돈 기입장 대부분은 친구들과 슬러시나, 편의점을 가는 거 같다



"자 여기에는 아빠한테 용돈 받거나,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용돈 받으면 금액을 적고 옆에 여기 잔액에 총금액을 적으면 되고, 편의점이나 문구점 가서 물건을 사고 카드를 썼다 그러면 날자 먼저 적고 산거 이름 적고 그 옆에 지출에 가격 적고 잔액에 남은 금액 적으면 돼요. 어려우면 아빠가 공주 카드 쓴 날 이거 문자 보여줄 테니까 보고 적어요 잘 적어도 용돈이 올라갑니다."


"네!"



앞에 화에서도 말했지만 공주는 실제로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금액이 모자라면 대체로 다른 것을 사 돈을 낭비하는 타입이다, 결국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떼를 써서 가지고 싶은 것도 가지는 편이고, 하지만 적은 용돈으로 가지고 싶은 것을 사는 게 어떤 건지도 알려주고 싶었고 돈을 얼마나 잘 계획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깨우치길 바랐다


진짜 가지고 싶은 물건을 샀을 때 오는 쾌감, 그걸 사지 않고 다른 것을 샀을 때 오는 아쉬움, 삶이라는 게 기다림 만큼 성취했을 때 오는 달콤함이 매우 크니까


아이는 매주 용돈을 받고 기입장에 잘 적고 있다 요즘은 액수가 적어서 더 모아서 사고 싶은 거 사겠다고 열심히 모으는 중이다 거기에 덧붙여 아빠한테 말하면 간식이나 이런 건 잘 사주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전에는 학교 끝나고 집으로 오면서 친구들이랑 슬러시도 사 먹고 잘 그러더니 요즘은 잘 안 그러기도 하다



"공주 요즘은 슬러시 왜 안 사 먹어?"


"돈 아끼려고요."


"왜~ 친구들이랑 같이 하교하면서 친구들 한테만 얻어먹지 말고 친구한테 한번 얻어먹었으면 한번 사주고 그래야 해 알았지?"


"네."


"돈 모으기가 쉽지가 않지? 용돈도 적은 거 같고? 어른 되면 더 그럴 거야 그러니까 지금 많이 배워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떻게 모아야 할지."





아침에 목에 카드 지갑을 걸고 나가면 그날은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 먹는 날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어찌나 귀여운지


명절에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이 주는 용돈은 공주의 통장에 잘 모아져 가고 있다 나중에 크면 줄려고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줬다  통장만 보면 아빠보다 부자이다 이혼 전에는 아이 이름으로 매달 몇만 원 정도 넣어줬었는데 이혼하고 형편이 좀 안 좋았을 때에는 못 넣어줬었다, 아이 보험료 내기도 빠듯하고 핸드폰 요금도 저가 요금제로 바꿨었으니까, 이젠 한숨 돌렸으니 다시 아빠 이름으로 매달 조금씩 넣어줘야겠다


공주도 용돈 기입장을 쓰면서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똑똑하고 예쁜 아이니까 내가 억지로 알려주고 그러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오겠지? 한편으론 너무 일찍부터 알려주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가 아이답게 라는 생각을 누누이 하면서도 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른스럽길 바라는 이중적인 면도 생기게 되더라 그게 아이한테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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