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초밥을 만들어 줬다
공주는 의외로 회를 먹는다, 아빠가 낚시를 한때 해서 그런 영향인지 낚시를 가서도 얌전히 잘 놀다 오고 낚시로 잡은 생선을 집에서 손질해서 구워 먹거나 할 때에도 별 부담이 없었나 보다 앞선 화에서 새벽에 바다에 나가 잡아온 주꾸미도 잘 드시고 가리는 게 없어서 좋긴 한데 요즘은 연어에 꽂히셔서 2주에 한 번은 마트에 가면 연어 통 살로 돼있는 것을 한 팩씩 사 와 먹는다
"아빠 우리 이거로 초밥 만들어 먹어요."
"초밥 좋지 근대 이거 통으로 된 거 다 잘라서 밥 위에 고추냉이랑 회 한 점이랑 올려서 만들어야 하는데? 귀찮지 않을까?"
예상외의 포인트에 꽂히셨는지 자기가 만들어 주겠단다 아이 손을 씻기고 식탁에 앉아 아빠는 연어를 썰고 아이는 밥을 조막만하게(?) 뭉친다 그리고는 고추냉이를 살짝 얹고 그 위에 내가 잘라준 연어를 올려 꾹 누른다 그리고는 그 위에는 타르타르 소스를 한 수저 뿌리고 접시 위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한다
둘이 일을 나눠서 해서 인지 생각보다 금방 완료가 되었다 공주 얼굴을 마주 보고 씩 웃었다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와 함께 초밥을 집어 먹었다 공주는 좋아하는 만화를 보면서 며칠 밤에 비가 많이 내려서 베란다 문을 못 열었었는데 비가 오지 않아 환기도 시킬 겸 베란다 문을 열였다, 비가 왔어서 그런지 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공주가 해줘서 그런지 참 맛있네."
"다음에 또 해줄게요."
"그래 그래."
다음에 다시 해주겠다는 공주와 새끼손가락을 건다 공주가 만들어준 초밥 밥은 많고 연어는 조물 거려서 왠지 모르게 따듯한 거 같지만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밥 위에 얹어진 고추냉이와 연어 그리고 그 위에 타르타르 소스까지 모양은 어설프지만 공주의 온 힘이 여기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아이에겐 매번 아빠가 해준 밥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던 거 같아서 다행이다
일이 바쁘고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유가 없을 때가 많다 정말 아이 숙제 봐주는 것부터 내가 해야 할 일들까지 겹치고 엉키다 보면 가끔 감정적으로나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러면 거실 칠판에 있는 종이를 한번 본다
1.OO이 먼저 케어하기
그러면 신기하게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가 한번 되면서 우선순위가 잡히기 시작한다 서두른다고 안 되는 것을 알게 된 후론 더욱 그렇다 아이는 모르겠지만 아빠의 우선순위에는 항상 공주가 0순위니까 초밥을 먹으면서 공주를 본다
"아 맞다 저녁 먹고 숙제 가지고 와요 아빠 시간 있을 때 봐줄게."
"밥 다 먹고 이야기하면 안돼요?"
갑작스레 나온 숙제 이야기에 아이는 목이 막히나 보다 그게 내 어린 시절과 비슷해서 웃음이 나온다
"아니 알겠어요 밥 먹을 땐 이야기 안 할게, 밥 먹고 이야기할게 그래도 숙제는 해야지 또 밀려서 할 거야?"
"아빠!"
'알았어 알았어.'
거실에 웃음 폭풍이 한번 몰아쳤다 가끔 보이는 아이 같은 모습이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숙제를 하기 싫은 티가 팍팍 나야 어린애지 그래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