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딸랑구는 마음이 급해졌다
일요일 아침부터 아이가 분주했다 평상시에는 토요일 저녁에 늦게 자고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나는 편인데 일찍 일어나서 집안일 좀 하다가 컴퓨터에 앉아볼까 하고 컴퓨터 전원을 누르는 순간 아이가 방으로 들어와 안긴다
"아빠 방학숙제 해야 해요 곧 개학이야."
"숙제 별로 없지 않았어? 오늘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 어제 늦게 자던 거 같았는데?"
"숙제해야 해서요."
'아직 일주일 정도 더 남았으니까 한숨 더 자고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하세요.'
아이를 방안으로 밀어 넣고 이불을 덮어 준다 잠을 많이 못 자면 눈에 쌍꺼풀이 지는 게 나랑 많이 닮았다 시원하게 자라고 선풍기도 켜주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이내 다시 잠이 든다
10시 30분이 조금 넘자 아이가 일어났다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숙제를 봐주기로 했다
"독서 기록장이랑 일기 써야 하는데 일기는 다 썼어요, 독서 기록장만 하면 돼요."
"그래도 일기도 한번 가져와 볼래요? 틀린 글자 있으면 알려줄 테니까."
아이 옆에 나란히 앉아 틀린 단어들을 교정해 준다 나도 맞춤법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헷갈리는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찬찬히 고쳐준다 요즘은 틀린 단어들이 많이 줄었다 귀찮아하지 않고 집중해서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칭찬 한 소금 얹어 준다
"요즘은 틀린 글씨도 적고 연습 많이 했네요 대단해요 잘하고 있어요."
엉덩이를 톡톡 다독여주니 아이가 활짝 웃는다
"독서 기록장은 몇 개 안 남았으니까 오늘부터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쓰면 되겠네요."
"네, 읽고 싶은 책 가져올게요 아빠가 읽어주세요."
아이가 책을 꺼내 가져온다 한가롭고 나른한 주말 아침 거실에 마주 앉아 조용히 나긋나긋 책을 읽어준다 길지 않다 어떤 아이가 친구들이 부탁할 때 싫어라고만 이야기하다가 후에 친구들과 같이 놀려고 했는데 친구가 싫다고 하자 그제야 깨닫고 사과하는 그런 책이었다
항상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혼자서 사는 세상도 아니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아이가 느끼는 것은 어른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아이 나름대로 배움이 있을 것이다
"딸랑구도 무슨 이야기 인지 알겠어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싫은 것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때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도와주면 그 친구도 나중에 OO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거야, 대신 그때 친구가 도움을 안 준다면 친구가 아닌 거지. 그렇다고 OO이가 너무 힘든데 도와줄 필요는 없어요 제일 중요한 건 너 자신이야 OO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난 다음에 친구들 도와주세요 그러려면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네!"
아마도 정확히 무슨 이야기 인 줄은 모를 것이다 무작정 돕는 건 어른인 나도 힘들다 내 자신이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도 나는 법이다 언젠가는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책을 읽고 아이는 독서 기록장에 사각사각 글씨를 적기 시작한다 슬슬 간식준비를 해야겠다 모처럼 공부도 잘했으니 오후에는 좀 놀게 놔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