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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Aug 20. 2024

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275)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딸랑구는 마음이 급해졌다



일요일 아침부터 아이가 분주했다 평상시에는 토요일 저녁에 늦게 자고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나는 편인데 일찍 일어나서 집안일 좀 하다가 컴퓨터에 앉아볼까 하고 컴퓨터 전원을 누르는 순간 아이가 방으로 들어와 안긴다



"아빠 방학숙제 해야 해요 곧 개학이야."


"숙제 별로 없지 않았어? 오늘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났어 어제 늦게 자던 거 같았는데?"


"숙제해야 해서요."


'아직 일주일 정도 더 남았으니까 한숨 더 자고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하세요.'



아이를 방안으로 밀어 넣고 이불을 덮어 준다 잠을 많이 못 자면 눈에 쌍꺼풀이 지는 게 나랑 많이 닮았다 시원하게 자라고 선풍기도 켜주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이내 다시 잠이 든다


10시 30분이 조금 넘자 아이가 일어났다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숙제를 봐주기로 했다



"독서 기록장이랑 일기 써야 하는데 일기는 다 썼어요, 독서 기록장만 하면 돼요."


"그래도 일기도 한번 가져와 볼래요? 틀린 글자 있으면 알려줄 테니까."



아이 옆에 나란히 앉아 틀린 단어들을 교정해 준다 나도 맞춤법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헷갈리는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찬찬히 고쳐준다 요즘은 틀린 단어들이 많이 줄었다 귀찮아하지 않고 집중해서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칭찬 한 소금 얹어 준다





"요즘은 틀린 글씨도 적고 연습 많이 했네요 대단해요 잘하고 있어요."



엉덩이를 톡톡 다독여주니 아이가 활짝 웃는다



"독서 기록장은 몇 개 안 남았으니까 오늘부터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쓰면 되겠네요."


"네, 읽고 싶은 책 가져올게요 아빠가 읽어주세요."



아이가 책을 꺼내 가져온다 한가롭고 나른한 주말 아침 거실에 마주 앉아 조용히 나긋나긋 책을 읽어준다 길지 않다 어떤 아이가 친구들이 부탁할 때 싫어라고만 이야기하다가 후에 친구들과 같이 놀려고 했는데 친구가 싫다고 하자 그제야 깨닫고 사과하는 그런 책이었다


항상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혼자서 사는 세상도 아니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아이가 느끼는 것은 어른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아이 나름대로 배움이 있을 것이다



"딸랑구도 무슨 이야기 인지 알겠어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싫은 것도 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때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도와주면 그 친구도 나중에 OO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거야, 대신 그때 친구가 도움을 안 준다면 친구가 아닌 거지. 그렇다고 OO이가 너무 힘든데 도와줄 필요는 없어요 제일 중요한 건 너 자신이야 OO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난 다음에 친구들 도와주세요 그러려면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네!"



아마도 정확히 무슨 이야기 인 줄은 모를 것이다 무작정 돕는 건 어른인 나도 힘들다 내 자신이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도 나는 법이다 언젠가는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책을 읽고 아이는 독서 기록장에 사각사각 글씨를 적기 시작한다 슬슬 간식준비를 해야겠다 모처럼 공부도 잘했으니 오후에는 좀 놀게 놔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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