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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항 May 10. 2022

세 번째 살인-스포 많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7년 작입니다. 야쿠쇼 코지와 후쿠야마 마하사루가 주연을 맡았고, 요즘 대세 히로세 스즈가 주요 인물로 출연합니다.     


  영화는 어둠 속에서 미나미(야쿠쇼 코지)가 자신의 일터 사장을 살해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빛나고 있는 도시. 악인지, 긴장감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나미.

  미나미는 이미 한차례 강도 살인의 전과가 있습니다. 이미 자백까지 마친 상태에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이 사건을 맡게 되는데요. 시게모리의 부친은 미나미의 이전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판사였습니다. 묘한 인연이죠.

  일단 자백까지 마친 비교적 명백한 사건이지만, 미나미의 진술은 매번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도박자금을 훔치기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피해자의 부인으로부터 의뢰받은 청부살인이었다고 진술하죠.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일 지도 모르지만 시게모리는 딱히 사건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당초의 계획된 강도 살인이 아닌 청부살인의 종범이며 주범은 피해자의 부인이라고 재판을 이끌어 사형을 면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어차피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어. 우리는 유리한 쪽을 선택하면 되는 거야.”      

   그러나 당연하게도 시게모리의 주위에선 이러한 현실적인 신념에 대한 반감도 존재합니다. 담당 검사는 시게모리를 혐오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당신 같은 변호사들 때문에 범인이 자신의 죄와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그를 비난합니다. 게다가 미나미의 첫 사건을 맡았던 시게모리의 부친은 “살인자는 타고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어떤 일을 겪어도 변하지 않는다.”라면서 자신이 처음 강도 살인 때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죠.

  시게모리는 그런 이들의 ‘오만’과 ‘편견’을 비웃습니다. 누가 봐도 시게모리는 정의로운 변호사가 아닙니다. 그저 승률에만 목을 매는 세속적인 인물이죠. 그러나 그런 그이기에 오히려 스스로를 정의라고 생각하며 훈계하는 인물들보다 더 유연한 사고를 합니다.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멋대로 착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을 단죄하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요.     

 

  조사를 하면 할수록 시게모리에게는 미나미라는 인물상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일례로 미나미는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 자신이 기르던 카나리아가 병에 걸려서 죽자 땅에 묻어줍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파묻은 새는 한 마리가 아니라 다섯 마리. 이건 아무리 봐도 병사가 아니라 미나미가 죽여서 파묻었다고 생각되죠. 이유를 묻는 시게모리에게 미나미는 대답합니다.  

  “새삼스럽게 밖에 나간다한 들 이 새들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마리는 놓아주었지만, 혹독한 추위에 먹이라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요?” 라면서요. 

  이 때 까지는 미나미의 실체가 무척 모호합니다. 카나리아 사건은 미나미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보여주는 장치인지, 아니면 혹독한 현실에 마주한 약자들의 비관적은 현실 인식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지 혼동스럽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나미는 사건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한 것입니다. 자신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새들에게 미리 조치를 취한 것이죠. 계획 살인인 걸까요?

  또 한 가지, 미나미는 집주인에게 월세를 미리 지불했습니다. 이것 역시 자신이 체포될 것을 미리 예상한 행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해 미나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월세를 내는 것은 기쁨입니다. 교도소에서는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미나미는 면회실 유리벽에 손을 대고, 시게모리도 손을 마주 대보기를 요청합니다. 이렇게 하면 서로의 진심이 더 잘 전달된다면서요. 미나미는 계속 궁금했던 겁니다. 자신의 변호사인 시게모리가 과연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는 지를요. 미나미는 마지못해 손을 대지만 금방 떼어냅니다.      

  시게모리는 미나미의 계산된 체포가 피해자의 딸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나미의 딸은 삼십대의 윤락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이며,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딸, 사키에는 여고생이며 역시 다리를 접니다. 이상하게도 사키에는 미나미를 자주 찾아오고 비교적 친하게 지낸 것 같습니다. 정작 미나미의 딸은 단 한번도 아버지를 찾지 않았는데 말이죠.

  미나미가 사키에를 자신의 딸과 겹쳐보고 있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키에 또한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그녀는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증인일까요?     

  사건에 점점 빠져드는 시게모리. 묘하게 미나미에게 신뢰를 가지게 된 시게모리는 과거의 첫 번째 살인조차 그의 범행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미나미는 그런 시게모리에게 말합니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인간들이 있다. 그런 인간들은 죽어도 마땅하다. 사형 제도도 그를 위한 것이 아닌가.” 라고요. 두 사람의 얼굴은 유리막을 통해 반사되어 겹쳐집니다. 그리고 둘의 대화가 진솔해지기도 하고요. 마치 둘의 마음이 일치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죠.   

  

   첫 번째 공판은 무난하게 진행되지만, 그 이후 사키에는 시게모리와의 면담에서 이 사건의 동기에 대한 폭탄 발언을 합니다. 발언 내용은 피해자는 자신의 딸인 사키에를 지속적으로 성학대를 해왔고, 이를 알게 된 미나미가 자신을 대신해서 살인을 하게 됐다는 것이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를 위해 증언하겠다는 사키에. 하지만 어쩌면 그녀가 주범이고, 미나미는 사체처리만을 대신해준 공범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일단 미나미는 이 증언을 부정합니다. 사키에는 원래 거짓말을 잘 하는 아이라면서요. 급기야 사실은 자신이 살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자백을 하면 사형만은 명할 수 있다는 말에 그냥 거짓 자백을 했다는 미나미에게 시게모리는 그야말로 멘붕이죠.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해봐야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느나며, 시게모리는 이번에는 자신 쪽에서 미나미의 진심을 알고 싶다는 듯이 유리벽에 손을 올립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자신을 믿느냐는 미나미의 질문에 시게모리는 "믿는다" 대신 "알겠다"는 대답을 하죠.  믿고 싶은데 혼란스러운 것이겠죠. 이 부분 후쿠야마 마사하루 연기 진짜 좋았습니다.  

   어쨌든 이로써 사키에를 증인으로 내세움으로써 범행에 대한 정상참작을 유도하려 했던 변론 방향이 크게 틀어집니다. 엄청난 혼란과 갈등 끝에 결국 시게모리는 의뢰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키에를 법정에 내세우는 대신 무죄를 주장합니다. 재판장의 소란은 말할 것도 없지요. 증언을 자주 바꾸는 미나미에 대한 신뢰는 더더욱 추락했고 여기에 재판부의 이해관계까지 겹쳐져 미나미에게는 유죄 판결과 사형이 선고됩니다. 일보의 사법체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일단 판결을 받으면 대부분 실제 집행까지도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영화에서는 미나미의 감방을 비춥니다. 미나미는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 빵가루를 내밀어 새들에게 줍니다. 한편 시게모리는 사키에에게 미나미를 살려주지 못함을 사과하지만 사키에는 “여기에서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로 답을 합니다. 아무도라... 결국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던 미나미의 말조차 사실에 아니라는 의미일까요?     

  마지막 면회 장면에서 면회실에 처음으로 햇빛이 들어옵니다. 이제 미나미를 온전히 신뢰하게 된 시게모리는 그가 사키에를 위해서 살인을 하고, 자신을 희생시킨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존재로 살아왔던 그가 처음으로 한 이타적 행위를 하고 가치 있게 죽어간다. 사실이라면 참 좋은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미나미는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에 묘한 여운을 남기죠.

  “......그것이 사실이라면.” 

  시게모리는 다시금 혼란스럽습니다.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그가 사키에를 위해 살인을 한 것이 사실이 아니란 뜻일까요? 끝까지 해답을 구하려는 시게모리에게 미나미는 “정신 차리라. 나는 살인자일 뿐이다.”라고 답합니다.     

  영화는 다시금 갈 곳을 잃은 듯한 시게모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 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처음입니다. 이 영화를 본 이유는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출연한 스릴러라기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같은 추리물을 기대했기 때문인데요.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에 놀라서 찾아보니 바로 그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었네요.

   영화는 끝까지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반부에 시게모리는 동료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죠. 마치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사건을 알아내가는 자신들로서는 이 사건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고요. 관객도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보다 더 많은 것을 추리해내기는 어렵습니다. 저희들도 그저 장님이 만지고 있는 코끼리의 일부만을 가지고 영화를 짐작할 뿐입니다. 

   사건의 진상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범인은 미나미나 사키에 둘 중 한사람이며, 동기는 사키에의 성학대가 맞겠죠. 그렇다면 미나미는 왜 그렇게 손해볼 행동만 골라서 했으며, 결국 사형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그의 세 번째 살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저지르는 살인.

  아래부터는 제가 만진 코끼리의 일부로서 뇌피셜에 불과하니 영화가 의미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스산합니다. 마치 흑백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죠. 영화에서 온기라는 것은 딱 두 번 느껴지는데, 한번은 시게모리의 꿈 속에서 미나미, 사키에와 함께 눈싸움을 하던 장면, 다른 한번은 미나미가 교도소에서 창밖으로 손을 뻗어 새들에게 빵가루를 주던 장면. 그리고 굳이 추가하자면 시게모리와 미나미의 마지막 면회 장면은 미묘하게 평온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러한 장면들은 말할 것도 없이 미나미의 마음이 따뜻한 순간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시점은 미나미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흑백처럼 스산한 세계는 미나미가 바라보는 현실세계입니다. 그에게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는 딸과 가족을 연상시키는 사키에, 그리고 새. 네. 새죠. 카나리아는 미나미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라고 짐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카나리아 사건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미나미는 혹독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기에 새들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를 보면 영화의 맥락 상 영화 미나미는 동물을 학대하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진심으로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미나미가 카나리아를 죽인 이유는, 그 새를 아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 그가 카나리아를 왜 죽여야 했을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그에게 카나리아는 누구일까요? 사랑스러운 존재. 그러나 약하기 때문에 혹독한 세상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은 존재. 그러면서도 역시 마지막 희망을 포기하지 못해서 한 마리는 결국 풀어줄 수밖에 없는 존재. 미나미 자신, 자신의 딸, 사키에 모두 카나리아겠죠. 이 중 죽인 카나리아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인 자기 자신이며, 풀어준 카나리아는 딸과 사키에입니다. 이들이 잘 해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자신처럼 빵가루를 주면서 이들의 손을 끌어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미나미 자신의 손을 끌어주는 이는 없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떠나가고 면회 오는 이라고는 자신의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변호사밖에 없죠. 월세를 내고 살아가는 것조차 기쁨이라고 생각한 미나미에게는 이제 그 기쁨의 터전마저 없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누가 무슨 권리로 관장하는 것인가. 나의 삶과 죽음은 내가 정하고 싶다.’ 미나미는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자신이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태어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 즉 사키에를 끝까지 지켜내는 일을 하고, 살인자인 스스로를 사형이라는 방법을 통해 살해해버립니다.      

   저는 영화의 말미에 시게모리와 미나미가 나눈 대화는 마지막 부분을 빼고는 모두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마지막 멘트, “그게 설령 사실 이라면요.. 정신 차리세요.저 같은 살인자에게 그런 걸 기대하면 안됩니다.” 이 부분 때문에 시게모리도, 보는 사람도 다시 멘붕에 빠지게 됐는데요. 영화를 다시 보면서 저는 이 부분은 미나미가 시게모리를 새장 밖으로 날려 보내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잠깐 다른 데로 새자면, 이 영화의 두드러진 점은 인물들을 담는 카메라 연출입니다. 미나미와 시게모리의 면회 첫날은 둘을 평범하게 따로 따로 비춥니다. 그러나 시게모리가 미나미의 심정에 몰입을 하면 할수록 둘의 프레임은 겹쳐지죠. 유리창 반사를 이용해 둘의 얼굴이 겹쳐지게 한 장면과 두 사람이 정면으로 대치하는 옆모습 장면 등을 차분하면서도 엄청난 압박감을 주는 명장면들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미나미의 시각으로 본 세상이라고 전제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시게모리의 심정적 몰입 장면 역시 미나미의 시각에서 본 시게모리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미나미의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자신을 찾아와주고, 결국 당초의 목적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바램을 이루어준 시게모리가 새장 속의 새처럼 나름 중요한 존재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마지막 대사를 통해 풀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미나미를 구원해주지 못했다는 속박으로부터 말이죠.      

  전형적인 일본식 추리물을 기대하신다면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 수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요.

   하지만 수수께끼가 다 풀려서 재미있는 영화도 있고, 수수께끼가 다 풀리지 않아서 재미있는 영화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 영화는 스토리도 훌륭하만 연출과 연기도 참 인상적입니다. 특히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참으로 명불허전이더군요. 영화의 격을 한 층 더 살린 연기... 보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탐정 갈릴레오’의 세계에서는 무슨 사건이든 다 해결해버리는 후쿠야마 마사하루도 이 사건 앞에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쩔쩔매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다른 출연진들 연기고 좋았고요.


   어쩌면 저 또한 사건의 실체인 코끼리를 단순한 뱀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를 더 읽어보면서 퍼즐을 짜맞춰봐야겠지만, 저에게는 그래도 미나미의 선택이 참.... 아프게, 그리고 공감되게 와 닿았습니다. 

   늘 나 같은 거 왜 태어났을까라고 살아왔던 남자가 단 한번,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저지른 이타적 살인, 그리고 이를 통한 궁극적인 구원을 미스테리 형식으로 풀어낸 명품 영화. 저에게 이 작품은 이렇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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