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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항 May 08. 2022

옥토버리스트(제프리 디버)-스포 적음

  소설의 첫 장


  주인공 가브리엘라와 샘은 유괴된 가브리엘라의 딸을 찾기 위해 어떤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유괴된 소녀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옥토버리스트’라는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가브리엘라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딘가 부상을 당한 상태이며 샘조차 많이 지쳐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브리엘라는 옥토버리스트가 무얼 의미하는 건지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샘에게 말하려는 순간 유괴범이 방 안으로 침입해서 총구를 이들에게 겨눕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시간은 방금 사건이 일어나기 2시간 전으로 향합니다.     

  

  ... 뭐지? 이 대책 없는 전개는....

  도입부를 읽으면서 드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은 진행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즉 방금 소개한 소설의 맨 앞부분이 스토리의 결말이 되며, 뒷 페이지를 읽을수록 결말 바로 앞의 상황이 이어지는 형식이란 거죠. 매우 흥미롭지만 그만큼 우려되는 설정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초반부는 우려대로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쉽지는 않으며, 오히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초반부의 당혹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시는 독자들도 많으실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고비만 넘기시면 세상에 이런 쾌감이 또 없습니다. 아슬아슬한 스릴이 최고조에 달할 때쯤 뒷장을 읽으면 예측했던 설정이 뒤엎어지고, 안심할 때쯤 새로운 전개에 숨이 막힙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긴장과 완화를 마음대로 조정하는데, 이건 뭐 당연한 일이겠죠. 작가가 무려 제프리 디버인데요.


  제프리 디버는 롤러코스터 식 추리 소설의 장인으로 대표작인 링컨 라임 시리즈를 보시면 종종 등장하는 패턴이죠. 소설 속 살인마는 어떤 트랩 등을 이용해 주인공 일행이나 일반 선량한 시민들을 살해하려 합니다. 어떤 트랩을 설치했는지 알고 있는 독자들은 아슬아슬해 미칠 것 같습니다. 다가가는 주인공을 말리고 싶죠. 그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른 무렵, 다행히 미리 범행 계획을 어느 정도 파악해둔 주인공은 이를 피해 잘 빠져나가는 겁니다. 덩달아 나오는 독자들의 안도의 한숨.

  이렇게 뛰는 놈이 주 긴장감을 나는 놈이 풀어주는 식의 패턴은 작가의 작품에서 꽤 자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늘 스릴감이 굉장합니다. 계속 읽다 보면 이제쯤 반전이 있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 반전을 주는 방식이 매우 정교하면서도 깔끔해서 기분 좋은 뒤통수를 맞는 느낌입니다.

  때론 반복되는 패턴이 이젠 눈에 보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작품 속 트릭을 미리 찾아내는 것보다, 작가가 파놓은 크고 작은 함정에 기꺼이 빠져주는 편이 훨씬 더 재미있을 때도 있더군요.     


  소설의 결말, 그러니까 이 모든 서사의 시작 부분은 기발하고, 특별하고, 완벽합니다. 읽는 내내 과연 마지막 페이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무리 역순 서사라고 하더라도 최종 결말에서는 다시 한번 순서를 역행시키지 않는 한 도무지 이 소설은 마무리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아, 정말이지 스포일러 없이 칭찬하기가 힘드네요. 그만큼 깔끔한 사이다 마무리였습니다. 완독 후 다시 한번 작품을 읽어보시면 작가가 깔아 두었던 수많은 복선들을 찾아보실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은 덤입니다.


  “믿고 보는...”이라는 표현 참 많이 보이죠. 어떤 경우에서도 이름값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쓰이는 특별한 수식어죠. 저는 이 책을 볼 때만큼 이 말을 실감한 적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제프리 디버라는 작가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백발백중의 확률로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작가입니다. (아, 까르트 블랑쉬는 예외로 해야겠네요. 제프리 디버가 쓴 007 시리즈로, 아쉬움이 많은 소설입니다. 저는 제프리 디버 답지도 않았고 007 답지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디버와 007은 결이 맞지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소설은 조만간 별개의 리뷰로 다뤄볼 예정입니다.)

  찜찜함도, 밋밋함도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크고 작은 반전들로 즐거움을 주지만, 결코 반전에만 의존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믿고 보는 작가가의 새로운 시도! 진심으로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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