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리뷰했던 “살육에 이르는 병”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의 반전 역시 탁월했기에, 나오키상 수상작으로서 손색이 없는 ‘달과 게’의 충격이 정말로 대단했기에, 미치오 슈스케의 신작은 늘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겨있었습니다. 실제로 구매로 이어지든 그렇지 않든, 그만큼 저와 동갑내기인 이 작가의 작품은 늘 중박 이상은 간다는 믿음이 있었죠.
용서받지 못한 밤은 참으로 오랜만에 본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입니다. 저에게는 처음으로 접하는 ‘서술 트릭을 벗어난’ 그의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은 발간된 지 오래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줄거리는 스포 없이 최대한 압축해보겠습니다.
딸이 엉겅퀴로 사람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아내를 잃은 그로서는 딸마저 잃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 가족을 위협하는 협박범이 있습니다.
소설은 협박범으로부터 딸을 지키고자 하는 유키히토의 고군분투를 그린 작품입니다.
특유의 서술 트릭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등장인물과 독자들이 스스로 속아버리도록 만드는 솜씨는 역시 반전의 장인답습니다. 흥미진진한 전개에 전반적인 스토리나 분위기도 딱히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그런데... 글쎄요. 저는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더군요.
과거 사건의 전말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고(이 점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분들께서도 쉽게 알아차리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소설의 발단이었던 아내의 죽음을 딸의 과실로 치부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 소견입니다만, 더 더 근본적인 시초였던 어머니 죽음과 관련하여, 조금 더 강한 감정 처리가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아쉬웠고요.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서는 서술 트릭 자체도 반짝반짝 빛났지만, 작품에 깔린 소년의 상처받은 마음이 결국 그러한 트릭을 만들어내게 됐다는 점에서 작품의 주요 정서와 핵심 트릭의 시너지가 있었죠.
이번 작품은 억울하고 괴로운 감정과는 별도로, 애초에 유키히토의 고행이 다소.... 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한 착오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공들여 쌓아 올린 모래성 같다고 할까요.
그렇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역시 미치오 슈스케. 억울하고 먹먹하고 속상한 내용을 특유의 동화적인 분위기로 풀어나가, 어두운 수채화 느낌의 작품이 탄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