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에 뾰족한 돌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자격지심이 뾰족하게 나를 찌르면 열등감이 지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찔렀다. 내 생각과 내 몸이 따로 노는 듯했다. 이 느낌이 참 싫었다.
왜 들리지 않았을까? 왜 몰랐을까? 이유도 없었다. 그냥 나는 자연스럽게 몰랐으니까.
모르는 게 자연스러웠다. 당연히도 몰랐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학창 시절 지금 진도가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어디쯤인지 몰랐을 것이다. 흔들리는 동공은 지금 어디쯤인지 찾느라 불안에 떨고 있었을 테니까.. 나는 최대한 보이지 않으려 몸을 숙였다. 내 노력이 허무할 만큼 나는 꽤 키가 큰 아이였고 게다가 적당히 눈에 띄는 아이기도 했다. 명랑함이라는 게 내게 없었다면 난 표정 없는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명랑함이 내게 있어 다행이었다.
이상한 불행이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자꾸만 뭔가를 하지 못하도록 잡아끄는 느낌..
그런 느낌이 있다. 아주 찝찝하고 거북하거든. 아무리 눈을 비벼도 모든 것이 흐릿하게만 보이고, 어떻게든 앞을 보려고 애쓰지만 불안과 초조함만 커져갈 뿐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안개가 짙게 끼어 앞을 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내 인생이 그런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그런 느낌 다른 사람들은 알까?
아무리 노력해도 선명해지지 않는다. 여전히 뿌옇다. 그냥 갈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상태일 뿐이다.
너무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내가 ADHD 주의력 결핍형인걸 알았을 땐 좀 허탈하기도 했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끝없이 내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이유였다니.. 할 말이 없다.
줄곧 의심이 되긴 했다. 그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20대의 나는 '자아가 여러 개인가?' 하는 의심을 했었다.
그 정도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어왔다. 답이 단순해지자 허탈했다.
긴 시간 혼란스럽고 불안했고 우울의 돛단배를 탔다. 파도가 오면 휩쓸리고 해가 뜨면 무력했다. 그런데 그게 이런 단순한 답이었다니.. 그걸 알았을 땐 좀 큰소리로 울었다. 억울함이 나를 찌르고 곧이어 화가 나를 때렸다. 그 화는 무력감으로 변해 나를 집어삼켰고 나는 그 속에 갇혀버렸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가 그런 모습으로 세상에 온 거지..
다시 태어날 수는 없으니 방법을 찾아야 했다.약은 먹고 싶지 않았다. 약은 나를 통제할 것 같아 먹고 싶지 않았다.고질적으로 갖고 있던 편두통도 약을 거부한 이유다. 무언가에 집착을 하면 중독을 보일 성향이라 술도 마시지 않았다. 술이 약한 건 맞지만 그것도 핑계다. 불면으로 먹던 수면제를 끊는 것도 어려웠다. 몇번 사고를 낼 뻔 하고 정말 힘들게 끊어냈다.
시작하면 집착하고 의존하고 중독될 것을 알았다. 그 끝은 예쁘지 않을 거고..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감정을 통해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알아가며 살기로 했다.바보같이 굴면 '바보구나' 하고 이상하게 굴면 '이상하네'하며 방법을 찾기로 했다. 꽤나 멍청하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고 의외로 괜찮은 구석도 있었다.
나를 알아갈수록 이상하고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
상담원의 통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고객님 같은 분은 처음 봐요. 진짜 처음이에요." 그래 내가 생각해도 없을 거 같다. '가만히 두면 밥은 먹고살겠냐.. 살아는 남겠냐?'
반복되는 좌절과 자책감 거기에 따라오는 무력감.. 이 과정이 회전하는 공처럼 무한 반복된다. 그걸 평생 느끼며 살아내는게 주의력 결핍형이 겪는 삶이다. 이건 일상이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이걸 가볍게 털어내며 반복할지라도 계속해나가야 한다. 나를 정확히 알고 패턴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사소한 성과가 큰 위안이 되었다. 그것이 나를 버티게 했다.
완벽함을 버리고 효율성과 적당함 그 사이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 만든 체크리스트의 기준을 충족하면 그냥 받아들이는 거다. 더 이상은 없다. 그 이상을 생각하면 그때부터 모든 게 꼬인다. 상황만? 아니 감정도 꼬인다. 주의력 결핍형은 무던한 성격이 아니다. 결코 그렇다고 볼 수가 없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민할 수 있다. 지금껏 말하지 않았지만 거기엔 '강박'이라는 뾰족함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어설픈 주제에 어정쩡하게 강박적 성향까지 갖고 있다. 총체적 난관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느려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느린 행동 뒤에 느린 사고가 존재한다. 생각마저 느리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몸도 박자를 맞춰 느리다. 과잉행동을 보이는 유형은 몸이 엇박자를 띄며 허둥거리지만 조용한 나 같은 유형은 그 순간의 머리회전 또한 슬로우 버전이다.
" 대체 왜 이렇게 느린 건데? 빨리 못해?" 응 못해. 왜냐하면 머릿속도 똑같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거든..
그런 내가 불이 나게 움직일 땐 그 뒤에 체력방전이 반드시 따라온다. 손이 떨릴 정도로 순식간에 허기지고 머리는 텅 빈 것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 가끔 저혈압이 밀려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