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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모 Aug 15. 2023

거리의 미학

건강한 관계의 정석

난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좋다. 아마도 가장 가깝다는 인간관계에서 겪은 트라우마의 경험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워지면... 물론 좋다... 모든 걸 털어내놓을 수 있어서, 함께 짊어질수도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원한다. '내가 너인양, 니가 나인양' 하는 그 가까움은 기실은 욕망이 아닐까. 니가 나를 완전히 알아주고 나의 모든 것을 용인하고 받아주고 이해해주었으면 하면. 나와 다른 너의 모습은 없었으면 하는.. 그냥 니가 나같길 바라는..나와 다른 '또 다른 너' 같은 건 없었으면 하는..


거리가 없어진 그 밀착된 공간에서, 그때 털어놓는 그들의 민낯에 가끔은 화들짝 놀라지 않는가.. 그들의 호불호와 욕망과 상처와 허전함에... 그만치 가깝지 않았을 땐 몰랐던 그 민낯이 드러내는 솔직한 욕망에, 이기심에, 때로는 놀란다... 차라리 그리 가깝지 않았다면 좋았을까 싶을만치 그에 대해 알고 나면, 그 전에 적당한 거리 위에서 만났던 시간들이 오히려 그리워질만치.


그러나, 또 그렇게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인정'에 굶주린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지독시리 그렇다...)


하지만 그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도 그 존재를 가감없이 드러내 주는 벗들이 있다. 한없이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으나 인정에의 욕구를 넘어섰기에 외로움도 즐기는 그들이 멋지다. 가까이 다가가도 밀어내지 않는 그들의 넉넉한 품에 놀란다...


그 품이 아직 없어서일까.. 난 누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달아난다. 자유롭고 싶다는 이 맘은, 그 무엇에도 속박되고 싶지 않다는 이 맘은, 니가 나인양, 내가 너인양 가차와지려는 사람들의 그 거리없음이 부담스런 나는.. 아마도 아직 무지 '관계에' 얽매여있나 보다. 그래서 지레 달아나려나 보다.


난 사람이 좋으면서도 절대적으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그리고 그 무엇에도 속박되고 싶지 않는, 아직은 무지 얽매어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 소탈한 거리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아직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겹쳐지는 두 별의 만남은 아름답지만, 두 별이 완벽하게 합쳐지길 바라는 것은 파괴의 욕망이라는 D.H. Lawrence의 말. 차라리 홀로 외로운 별이 전일적으로 합쳐지길 바라는 두별의 파괴적 욕망보다 아름다워보인다.


한편 드는 생각

나의 거리 두기는 나의 한정된 에너지탓과 좁은 인간성때문이겠지만, 이 모든 한계를 넘어서고서도 거리두기가 가능한 벗들은,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타인을 관조할 수 있는, 그리고 그 거리안에서 세상과 자신과 타인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겨울 새벽의 서늘하고 맑은 정기같은 기운이 아닐까 싶다... 그 서늘함이 오히려 따뜻한 힘이 되는 그런.


문득 '건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삶의 지혜이고 힘이란 생각이 든다.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그 힘이야말로 다른 존재에게서도 한 걸음 물러날 수 있는 힘이고 지혜아닌지. 그 거리가 없어질때야말로, 가장 친밀하고 내밀하다 싶은 관계야말로, 오히려 배신과 오해와 증오가 잉태되는 순간이라는 모순이 증명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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