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 메일링 : 저의 하루는 무엇으로 정의될까요?

2025년 9월 메일링 프로젝트

by argent

1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메일을 보내다니 해괴한 사람이죠? 그렇지만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첫 메일을 씁니다.



2
늘 메일이나 편지를 쓰면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맵니다. 게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다는 것은 제게 있어서 꽤 떨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왜 메일이 떨리는 일일까요? 왜냐하면 메일 주고받기는 늘 제게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투고 거절 메일, 웹소설 에이전시 투고 거절 메일, 공모전 낙선 메일, 그리고 4년 전의 개인적인 메일들. 차마 여기에서 개인적인 일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제게 있어서 그 일은 아주 큰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메일이 싫었습니다.

이번 메일링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메일을 아주 싫어하는 제게 행복한 메일도 있다는 사실을 선물해 보자. 그리고 글을 써서 메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자. 늘 나쁜 경험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좋은 경험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정 속에 있으니까. 궁극적인 삶의 결과치가 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테니까.

저 또한 그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운영되는 메일링의 4회차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굳이 4회차로 시범 운영을 설정한 이유는 제가 과연 업무적인 메일을 제외하고, 메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잘 버텨낸다면 4회차 이상 한 달 간격으로 정기적인 메일링을 진행할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돈을 받고 메일링을 진행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일기를 보내드리는 것이니까요. 제가 잘 해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정기 메일링으로 뵐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3
제 생각보다 많은 분이 메일링을 신청해 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작은 숫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정도의 숫자를 상상도 해본 적 없던 터라, 다음날 자고 일어나서 네이버 폼을 확인하자마자 눈이 아주 크게 동그래졌습니다.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가 떴습니다. 그리고 책임감이 막중해졌습니다. 반은 진심, 반은 장난입니다. 그만큼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제 일기를 몇십 명이 받아주신다는 것은 분명 신기한 일이 맞겠죠? 꼭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최근에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어서, 하나의 주제에 관해 말할 때도 종종 주제에 어긋나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읽고 쓰는 것이 굉장히 어렵거든요. 간신히 이어 나가는 수준입니다. 메일링을 시작한 이유에는 메일이 싫다는 감상을 극복해 보자는 취지도 있었지만 쓰지 못하고 있는 많은 글들을 토해내 보자, 라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해도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사랑에 대하여

폼 질문에 원하시는 주제를 여쭤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무려 ‘사랑’이라는 주제가 단어만 제시된 채로 응답이 세 개나 들어왔습니다. 네이버 시스템이 같은 응답이라고 분류까지 해주었더군요. 그래서 이 주제는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첫 번째로 들어온 주제기도 하고요.

우선 저는 사랑―이때의 사랑은 성적 욕구가 포함된 의미입니다―을 경시합니다. 그리고 늘 뒤통수를 맞습니다. 단 한 번도 삶의 첫 번째 이유가 사랑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생존하려면 꼭 성애적 의미가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데도 저는 사랑을 제외한 채 생존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무 살, 스물 한 살 때 뒤통수를 아주 세게 맞았습니다.

사랑은 비싼 가방, 고급지고 알이 커다란 시계, 빛나는 반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여유가 있고, 꼭 삶이 생존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고급 사치품 같은 것이라고요. 사랑 이야기를 하는 노래가 싫었고, 매일 울기만 하는 발라드가 싫었으며, 로맨스 소설이 싫었습니다. 생의 모든 순간 친구들이 하는 연애 이야기도 다 사치 같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사치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폭발적이어서 도무지 통제할 수가 없지만, 정말 극악의 상태일 때는 사랑이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생존을 제외한 모든 것이 사치였습니다. 지금은 어느 순간 제게 찾아오는 격동이 어쩌면 선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건 잠시입니다. 아직도 저는……, 사랑을 아주 두려워합니다.

저는 사랑이 정말 싫습니다. 우정도, 연인 관계도, 가족 간의 사랑도 모두 싫습니다. 저는 늘 을이 되는 기분입니다. 아마 상대방도 이런 기분을 느끼겠죠. 저는 늘 친구가 사는 곳에 찾아가는 사람이고, 중간 지점에서 만나지 않는 사람이고, 자존심을 전부 내려놓고 돌진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를 위해서라도,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차차 고쳐나가야겠죠.

제가 좋아하는 조중걸 교수님의 『러브 온톨로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요,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말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사랑이 아님이 분명하다. 사랑은 말해질 수 없다. (……) 우리의 언어는 우리를 기만한다. 실체 없는 말들이 팽배하다. 사랑을 말할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저 또한 가족 간의 사랑이니, 친구 간의 사랑 또는 우정이니 하며 사랑을 정의 내리는 과정에서 언어로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사랑은 말해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경험한 사랑은 기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로 생존하기가 벅찼고, 그 과정에서 사랑이란 사치품이라 생각했던 적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말했듯이 엄청난 뒤통수를 맞았죠.

놀라운 사실은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친구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몇 살 터울의 언니가 저와 친구의 사주를 봐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언니가 말하길, “○○이는 스무 살 때 각오를 단단히 하는 편이 좋을 거야. 엄청난 사랑을 만날 거거든. 너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거야. 정말 엄청난 사랑을 만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당연히 믿지 않았고 또다시 운명이라는 장난에 커다란 타격을 받고 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고,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은 지옥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됐나……, 이런 생각도 합니다.



5
충만하고 일상적인 하루에 대하여

저는 거의 매일 카페에 갑니다. 카페에 가지 못하는 날에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이라도 합니다. 저는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카페인 중독자고, 거의 물처럼 커피를 마십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물을 안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물도 하루에 3리터씩이나 마십니다. 저는 마시는 것들을 좋아하거든요. 저의 일상적인 하루를 단어 하나로 정의한다면 액체가 아닐까요? 액체처럼 흐르는 삶. 흐르는 시간. 흐르는 생각. 그리고 글.

최근 최진영 작가님의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을 읽으면서 ‘충만’하고 ‘일상적’인 하루란 무엇일까에 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 냄새, 사람과의 갈등 모두 지극히 인간적이겠지요. 그러나 그 파도 속에 있는 저 자신은 이 해일이 언제 끝날까 악몽처럼 느끼곤 합니다. 손에 붙든 불타는 희망은 오로지 하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책이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 『인간실격』의 세 번째 수기 마지막에 그런 문장들이 나오죠. 지금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몸부림치면서 비명을 지르듯 처참하게 살아온 <인간> 세상에서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딱 한 가지는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제게 있어서 충만한 일상은 행복도 불행도 없이 지내는 순간들입니다. 있는 것을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하지만 이렇게 말해두고서 저는 또 행복과 불행을 일상에서 가지가지 찾습니다. 제가 한 말은 그래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저 자신이 한심할 때도 많습니다. 충만하고 일상적인 하루는 이것의 반복입니다. 요가를 하듯이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다가도, 결국에는 의미를 찾아내어 제멋대로 해석하고야 마는 청개구리의 삶.

그래도 단 한 가지 충만하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애착 인형을 안고 잠들 때겠죠. 언젠가 이 친구와 꿈속에서 대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친구는 단 한 번도 제 꿈에 나오지 않았거든요. 사물에는 영혼이 없다지만, 충만한 하루를 온몸으로 느낄 때면 사물에 영혼이 있기를 간절히 빌게 됩니다. 최진영 작가님의 말씀처럼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6
고향이라고 느끼는 곳

제가 고향이라고 느끼는 곳, 진정으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다름이 아니라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디아루가/펄기아/기라티나에 등장하는 영원시티입니다. 저는 이 마을에 관해 할 말이 정말 많아요.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실 저는 어릴 때 독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뛰어놀기를 더 좋아했죠. 그리고 닌텐도 DS도 좋아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고요. 그냥 평균이었습니다. 문제는 제게 동생이 있는데 한 살 터울이었고, 공부를 너무나도 잘했다는 것이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초등학교 이 학년 때 대학 생물학 전공책을 혼자 사서 읽고 있었고, 그 모습을 학교 선생님이 보시고는 생명 과학 연구소에서 연구원분들에게 과외 같은 수업을 받게 하곤 했었습니다. 부모님은 운동이나 글보다는 제가 공부로 성공하기를 바라셨고, 그래서 동생과 많은 비교를 하셨었죠. 저는 늘 동생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과 열등감 속에서 자랐습니다.

처음 책을 잡았던 기억도 동생을 따라하기 위해서였어요. 동생을 이기기 위해서 싫어하는 공룡들의 이름을 전부 외웠고, 백과사전을 펼쳐서 천문학 용어를 외웠고, 식물도감을 펼쳐서 식물의 이름과 특성을 외웠습니다. 생물학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무엇이라도 했습니다. 물론 이기지는 못했지만요.

심지어 동생은 게임도 잘했는데요. 포켓몬스터도 전략적으로 하는 스타일이라 늘 저는 동생보다 게임 진도가 느렸습니다. 하필이면 저는 물 타입 포켓몬 팽도리를 쓰고 있었고 영원시티의 체육관 관장은 풀 타입 포켓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예상하시다시피 저는 여기에서 벽을 만나 한참을 계속 져야 했습니다. 동생은 쭉쭉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데도요.

거의 열 번은 넘게 더 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게임을 즐기려고 하는 건지, 동생을 이기기 위해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게임에 지쳐있었어요. 어쩌면 삶에 지쳐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게임을 포기하기 직전에 진짜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자. 동생을 이기고 말고 상관하지 말고, 그냥 내 최선을 다해서. 이런 마음으로 마지막 배틀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갑자기 제가 아슬아슬하게 체육관 관장을 이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를 잊을 수 없어요. 저는 어안이 벙벙했고 그리하여 영원시티는 제게 애증의 도시로 남았습니다.

이후에는 해피엔딩인데요, 동생이 다른 마을의 체육관에서 벽을 만나 고심하는 동안 저는 게임을 쭉쭉 진행했고 결국에 동생보다 먼저 포켓몬 리그 챔피언을 이기고 우승을 하게 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주인공의 엔딩 크레딧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때가 저녁 식사 시간이었는데, 저는 울면서 밥을 먹었어요. 부모님이 왜 그러냐고 여쭤보시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감격한 나머지, 처음으로 살아오면서 동생을 이겼다는 생각에 눈물이 펑펑 났어요.

여기까지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야기고, 고학년 때는 동생이 글을 쓰기 시작하길래 저도 같이 따라 썼습니다. 중학교 때는 동생을 따라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마구 빌려 집에만 오면 책을 읽었어요. 그렇게 모든 것을 따라하다 보니 언젠가 저는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따라하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쓰던 글이 너무 좋아져서 원래 하던 운동보다 글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동생을 무척이나 아낍니다. 같이 여행도 다니는 사이니까요. 하지만 이 복잡한 관계성에서 오는 각자의 열등감으로 이따금 서로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2025년 7월에 다녀온 오사카 여행 때 그랬었어요.

늘 동생과 싸울 때면 동생은 제게 ‘나를 안다는 듯이 말하지 마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기만 합니다. 이 상황에서는 말도 나오지 않고, 무엇보다 동생의 말들이 너무 상처인 탓에 감정 조절이 안 되거든요. 가족 안에서 저와 동생은 서로를 너무 내밀하게 잘 아는 탓에 상처도 더 크게 줍니다.

그러니 어쩌면 제 고향은 동생으로부터 온 열등감이 아닐까요? 저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킨, 그리고 지금의 저를 만든 과거의 상처이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7
늘 일상에서 이런 말을 해요: 말도 안 되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모든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싫다는 감상밖에 들지 않아요. 유일하게 도피할 수 있는 곳은 책이나 글, 그리고 잠입니다. 혼란스럽고,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더 이상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오후 다섯 시의 저녁은 제게 혼란 그 자체입니다. 이상하게 오후 다섯 시쯤만 되면 몸이 경직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머릿속에 생각이 휘몰아치면서 하던 일도 멈추게 됩니다. 중학생 때부터 늘 그래왔어요. 이상하게 해가 가라앉으면 저는 불안에 휩싸입니다.

제게 있어서 불안이란 오후 다섯 시입니다. 이상하게 저녁만 되면 불안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요새는 아예 일찍 잠드는 생활로 패턴을 바꾸기도 했어요. 한 달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오후 아홉 시면 잠드는데요, 그리고 새벽 세 시, 또는 네 시에 일어납니다. 그 시간에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은 서늘한 바람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런 생각이 들죠. 아, 생각해 보니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준비’란 살아가는 일에 대한 준비입니다.

새벽에 글을 쓰면서 처절한 자기 고백을 하고 나면 어느새 아침이 됩니다. 날이 밝아오고, 여섯 시가 되면 저는 밖으로 나갑니다. 집 근처에 24시간 하는 카페가 있거든요. 물론 무인으로 운영됩니다. 그 카페에 홀로 앉아 또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씁니다. 또는 책을 읽거나요. 요새는 책도 에세이 위주로 읽습니다. 긴 호흡의 장편 소설은 제 마음이 요동치는 탓에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렇지만 계속 관심이 가는 소설들은 시도할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시간이 비는 때가 있으면 도서관 로비에 책상과 의자가 모인 장소로 가서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열람실이나 자습실에서는 노트북을 두드릴 수가 없으니까요. 물론 비지 않는 시간은 강의를 듣는 시간입니다. 원래도 대학 방학 시즌 때는 일본어능력시험을 공부하려고 꾸준히 학원에 다녔었는데, 이번 여름방학에는 다니지 않았었네요. 공부는 꾸준히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중학교 친구들과 매일매일 무엇이라도 공부하자는 취지의 스터디를 하고 있어서, 적으면 하루에 2시간, 열심히 살던 작년 같은 경우에는 많으면 하루에 7시간까지 스터디를 하곤 했었습니다. 요새는 하루에 2-3시간 정도만 하는 것 같아요.

이번 학기에 듣는 강의는 주로 단편소설을 읽고 비평문을 쓰는 수업들입니다. 그런데 모든 수업이 다 이런 종류의 수업이라, 한 학기 동안 단편소설을 50편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다른 과목들은 짧은 보고서나 과제, 시험만 치면 되는데 세 과목이 문제네요. 그리고 시 합평 수업도 있어서 매주 여섯 개의 시를 합평해야 합니다.



8
다음 메일링 예고, 그리고 감상에 대하여

다음 메일링은 <가을>과 <상실>, <바다와 구름>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물론 주제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주제들이지만 저는 이 세 주제가 어쩌면 맞닿아 있을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번 메일링은 어쩌다 보니 예정된 1000자를 넘어서서 아홉 배 분량인 9000자 이상을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아시나요? 전 사실 텍스트 투머치 토커입니다. 글로는 늘 할 말이 많아지더라고요. 분량이 길어져도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라며,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