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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Jan 18. 2023

오늘도 나를 만나기 위해 운동한다.

운동하는 설렘에 대하여

“오늘도 필라테스하고 온 거예요?”

“금이 엄마는 어쩜 이렇게 운동을 꾸준히 해요?”


  평일 낮 데일리룩의 대부분이 레깅스 차림인 나에게 이웃들이 묻는다. 젠가부터 나에게 운동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조각이 되었다. 밥 먹고 씻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과이다. 그래서 운동을 왜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밖에 답할 수가 없다.

 

“하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나도 처음부터 운동을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 운동을 시작한 것은 수능을 치른 후 십 대의 끝자락이다. 그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은 안 하고 씻기만 하고 온 적도 많았다. (그렇다. 나는 헬스장을 목욕탕으로 이용했다.) 20대의 나에게 운동은 건강을 위해 해야 하는 것, 날씬해지고 예뻐지기 위한 수단,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운동이란,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끝내고 나서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운동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지금의 나에게 운동은 설렘이다. 혹시나 예약을 깜빡해 운동이 없는 날엔 아쉬움이 생긴다. 이렇듯 내 운동의 역사는 외적 동기에서 내적 동기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운동의 동기가 외부에서 내부로 처음 전환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바로 출산 후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첫 요가 수업을 듣던 날이었다. 그 당시 나는 가벼운 산후우울증에 시달렸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라는 결론이 났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쓰는 전형적인 내향형 인간이다. 그런데 갓난아기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내 모든 일상의 초점은 아이에게 맞춰져야만 했다. 그러니 에너지가 바닥날 수밖에. 그런 나에게 요가 수업은 내가 잠시 아이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운동보다 더 하기 싫은 육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동을 사랑하게 되었다.


  요가 수업을 듣는 동안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만 하는가. ‘우유부단’, ‘선택 장애’와 같은 말은 선택할 것이 별로 없었던 원시 자급자족 사회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먹고사는 문제, 말 그대로 무엇을 먹을지부터 어떻게 밥벌이를 할지까지와 관련해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은 가끔 어마어마한 파급효과를 가지고 온다. 이것은 영화 ‘나비효과’에 아주 잘 그려져 있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순간의 선택이 나와 내 주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무시무시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운동을 하는 동안 잠시나마 나는 선택을 쉴 수 있다. 내가 할 일은 오직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다. 선생님이 팔을 올리라고 하면 올리고 호흡하라고 하면 호흡을 하면 된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것이 내가 운동을 좋아하게 된 두 번째 이유이다.     


  또한 운동할 때의 나는 내 본연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 운동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나는 돈을 버는 사람도, 누군가를 돌보아야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로지 내 몸에만 집중한다. 평소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내 몸속 근육을 발견하고 아프고 불편한 곳을 알아차린다. 일종의 내 몸과의 대화이다. 놀라운 점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는 마음이 어수선하고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필라테스를 하러 갔다. 평소엔 쉽게 했던 사이드 밴딩 동작이 잘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이 나에게 무슨 일 있냐며 물으셨다. 나는 애써 웃으며 “오늘 컨디션이 좀 별로네요.”라고 얘기했는데 이때 내가 느낀 것은 몸과 마음이 정말 하나라는 것이다. 입은 거짓을 말할 수 있어도 몸은 거짓을 꾸며낼 수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내 마음이 내 몸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하나라면 역으로 몸을 움직여 마음을 조금 이완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날도 문제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운동을 끝낸 후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이것 외에도 참 많다. 운동은 운 같은 외부 요소가 아니라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이다. 또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잦은 성공 경험이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잘 안 됐던 동작이 가능해지는 날엔 엄청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인생이 짧게 느껴진다면 플랭크를 해보세요.”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플랭크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때의 기쁨이란!     


  나는 오늘도 나를 만나기 위해 운동을 하러 간다. 24시간 중 내가 나에게 선물할 수 있는 소중한 1시간. 오직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의 시간.


언젠가부터 난 청바지보다 레깅스를 더 자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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