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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호 Apr 23. 2023

장래희망 : 집사

조건 없이 주는 동물의 마음

나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으로 현재 미혼이다. 20대 초의 나는 이 나이까지 내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지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20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 20대 후반에는 결혼을 하는 인생판 미션임파서블처럼 당연한 루트를 타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나는 왜 인생을 도장 깨기처럼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과 함께 연애와 결혼 또한 저편으로 날려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는 종종 나의 지인에게 "음... 나는 35살까지 결혼을 안 하고 못하고 어쨌든! 이렇게 계속 혼자 살 거면 애완동물을 키울 거야! 특히 고양이!" 하며 나만의 맹세를 하였다. 그렇다. 나는 살면서 어떠한 반려동물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우는 삶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몇 해 전에 산 중턱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곳은 사람들의 입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곳이었는데 어느 겨울, 이름 모를 고양이 한 마리가 근무지에 나타났다. 그 고양이를 발견한 직장동료들은 고양이의 관심을 사게 위하여 이름을 지어주고 임시거처를 만들어주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최종 간택은 후보지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내가 되었다. 심지어 집사 간택은 나만의 맹세보다 훨씬 일찍 이뤄진 셈이었다.


사실 나 또한 그 고양이의 존재를 몰랐던 것을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담당했던 업무로 바빴던 나머지 나는 그 고양이에게 신경을 쓸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저 "아 길고양이구나. 이렇게 인적 드문 곳에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왜 여기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스쳐 지나가듯이 하였다. 그 당시의 나는 근무지 내 위치한 화단에 앉아 주로 업무 관련 전화를 하곤 했는데 희한하게도 이 고양이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던 나에게 먼저 다가오더니 나를 뭘 믿고 덥석 내 발에 기대어 자는지 알턱이 없었다. 그렇게 차츰 내가 이 아이의 밥을 챙겨주고 빗질을 시켜주고 눈곱을 떼주며 케어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업무로 지쳐 있을 땐 이 아이는 어디서 놀고 있든 상관없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나에게로 달려와주곤 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내던 나날들이 늘어갔고 나는 어느 순간 "이 아이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구나. 이 근무지를 떠날 때 이 아이와 같이 떠나야 하는구나. 나 집사 됐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 인연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내가 그 근무지를 떠날 때쯤 우리의 동거가 시작이 되었다. 나는 이 친구를 케어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퇴근 후 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일상 속 루틴이 되었고 유튜브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끊임없이 고양이에 대해 공부하였다.


이 친구는 고양이 치고 굉장히 소심하고 겁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긴장되는 순간이 찾아오면 얼음땡 게임처럼 몸이 얼음 되어 버린다. 본인이 싫어하는 행동을 누군가가 하면 하악질을 해도 냥냥펀치는 때릴 줄 모르는 집사네 3대가 덕을 쌓아야 가질 수 있는 성격을 가졌다. 이런 성격을 가진 고양이가 도대체 어떻게 밖에서 생활했는지 또 사냥을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했는지 새삼 놀라곤 한다. 그리고 장점이자 단점은 굉장히 말이 많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사람인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애옹' 하는 울음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말을 한다. 내가 말을 하면 꼭 대답을 하며 가끔 지인들과 통화할 때면 셋이서 대화하는 거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우울증이 찾아왔고 오히려 이 친구 덕분에 억지로라도 몸을 더 움직이고 말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지 않은 날에도 이 친구는 내 속도 모르고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럴 때면 순간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만.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줬으면.. 머리 아파" 하는 생각이 막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 들 때면 최대한 “저 아이는 잘못이 없어”라는 생각을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마음을 다 잡으려고 했다.


약한 존재에게 강하게, 강한 존재에게 약하게 하는 치졸한 방법 따위 쓰지 않겠다고 나는 늘 그렇게 다짐했다. 나 따위가 뭐라고 이 작은 생명은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내가 어디를 가든 졸졸 나를 따라다닌다.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하염없이 사랑스럽게 나를 쳐다봐준다. 너는 모르지. 잘 때면 늘 내 옆에 와 나에게 자신의 몸을 꼭 붙이고 자는 너를 통해 나는 마음속 깊이 고마움을 느낀단다.


때로는 공공연한 고양이라는 소설 속 한 문장이 생각이 난다. "고양이를 사랑하면 할수록, 윤주는 어쩐지 인간에게서 더 거리감을 느끼게 됐다."


이렇게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종일 아등바등하고 온 나에게, 내 인생에서 아무런 득도 실도 없는 사람한테 받은 상처를 치유해 주는 너라는 존재에 또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게 만감이 교차한 사람인 나는 오늘도 용기를 내본다.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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