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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호 Apr 29. 2023

존재의 이유

왜 무언가를 증명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나의 휴직이 알려지고 난 후 사람들은 질병이 무엇이냐에 대한 가십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의 상태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묻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사자인 한 명이겠지만 나는 그런 한 명이 모이고 모여서 다수를 상대해야 했다.

왜 나의 질병을 해명하고 증명해야 하는지,

왜 나의 질병휴직이 정당한지,

나의 팔이나 다리라도 부러져야 하는 것일까,

내가 CT나 MRI로 나타나는 질병에 걸려야 했던 걸까 등 수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내가 마주한 현실은 마치 덜 익은 감을 먹은 것처럼 굉장히 떫고 씁쓸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내가 소모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의 질병에 대한 설명을 멈추고 입을 닫았다.

나의 가족들에게조차 내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그 과정들을 가족도 아닌 타인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여유도 기력도 없었다.

( 그 와중에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고 걱정해 준 나의 사람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고 감사했다. )


우울증을 투병 중인 나의 상황과 감정 그리고 내가 내린 결정들을 어떻게 타인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킬까?

내가 우울증이 아닌 다른 병이었어도 그렇게 쉽게 단정 짓고 판단했을까?

다른 병의 환자에게는 나을 수 있을 거란 용기를 주는 말들로 가득하지만 왜 우울증은 환자를 힐난하는가?


가끔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내가 겪었을 때와 타인이 겪었을 때 다른 반응을 보이곤 한다.

타인이 겪었을 때는 대체로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이성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객관적으로 사태 파악을 하지만 내가 겪었을 때는 감정이란 것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성적인 판단과 객관적인 사태 파악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자기 객관화를 해야만 한다. 이 얼마나 간사한가.


문제는 타인의 상황이나 사건이 내가 전혀 겪어보지 않은 일이거나 내가 겪어보니까 그거 별거 아니라는 식의 태도이다.

왜 개개인의 상황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걸까. 왜 존중해주지 않는 걸까. 같은 조건이라도 각자가 받아들이는 것이 다름을 왜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왜 자신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증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내가 죄를 지은 것인가.


비단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소재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한다.

( 나의 소재는 질병일 뿐이고 그대들은 그대들 상황에 따라 다른 소재들로 되어 있겠지. )


이런 생각이 드는 요즘에 하필이면 N독하고 있는 책이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이라는 장편소설이다.

최은영 작가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고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을 집필하였다.

최은영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치 작가님이 내 삶을 살아보고 쓴 글 같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 하고 싶은 이야기 등 너무나도 나의 취향 저격이라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 내용 중 많은 글귀가 내 마음을 흔들고 후비고 다독여줬지만 오늘 내가 쓴 글과 비슷한 감성을 담은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 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 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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