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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Dec 28. 2023

#2. 어떨 때 눈물이 나나요? -나의 눈물 버튼

자신이 궁금하다면 십문십답

나비

나비, 차, 와이퍼

나비가 반토막 났어.

죽음을 앞둔 노인이 사랑에 빠졌던 여름을 떠올려.

분에 넘치는 여자였고

어리고 두려웠던 남자는

여름이 다시 올 거라 믿으며 여자를 보냈지만

여름은 다시 오지 않았지.”     


크리스마스에 아이들과 집에 콕 박혀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을 봤다. 사람마다 엘리멘탈의 소감이 다르겠지만, 나는 웨이드가 우는 모습이 제일 웃겼. 웨이드는 '나비, 차, 와이퍼, 죽음을 앞둔 노인' 대사를 할 때마다 펑펑 우는데, 내 머리, 마음에는 쏙쏙 박히지 않는 대사로 우는 게 웃겼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도대체 왜 우는 건지 궁금해서 대사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대사를 확인해도 딱히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애지중지 키우던 나비가 죽었거나, 죽음을 앞둔 노인의 서사를 더 잘 알고 있었더라면 나도 웨이드와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금 부끄럽지만, 나에게도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눈물 버튼이 있다. 바로 ‘소년 소녀 합창단의 노래’이다.      


오늘 아침에도 소년 소녀 합창단의 노래를 들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유튜브에서 ‘소년 소녀 합창단’을 검색했더니 많은 클립이 떴다. 이 중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른 윤학준의 <꼭 안아줄래요>를 재생했다. 감미로운 반주가 먼저 나오고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조금 과장한 듯한 입모양으로 아이들이 노래한다. 지휘 선생님을 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아이도 있고, 긴장이 되어서 억지웃음을 짓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의 다양한 표정이 사랑스럽다.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정말 사랑한다. 진성과 가성이 섞여 납작한 느낌이 드는 이 목소리에는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이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변성기 이후의 목소리는 동그랗게 다듬은 느낌이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다듬어지지 않아 더 생기 있는 것 같다. 고음으로 올라갈 때에는 조금 흔들린다. 이 흔들림이 정말 사랑스럽다. 이 목소리들이 합쳐져 화음이 되면 내 마음속에는 거대한 파도가 치는 것 같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      


한 곡이 끝났다. 유튜브가 연달아 다른 노래를 재생시켜 준다. 강현나의 <Let’s sing together>이 나온다. 차분한 <꼭 안아줄래요>와는 달리 신나는 노래다.  어린이 합창은 연달아 2곡을 부르는데 보통 첫 번째 곡은 조용한 곡을, 두 번째 곡은 신나는 곡을 부른다. 이 영상 속 아이들은 <꼭 안아줄래요>를 부르면서 무대에 익숙해졌는지, <Let’s sing together>을 부를 때는 표정이 다들 편안하다. 목소리에 더 힘이 생겼다. 목소리가 더 귀여워졌다. 너무 귀여운 소리에 마음속으로 ‘꺄아~!! 너무 귀여워!!’ 하고 비명을 지른다.      


율동을 하는 아이들을 자세히 본다. 율동을 보면 아이들의 성격이 보인다. 어떤 아이는 연습한 대로 율동을 한다. 이 친구는 학교에서도 모범생일 것이다. 어떤 아이는 율동이 좀 작다. 이 친구는 소심할 것이다. 어떤 아이는 살짝 조금씩 반응이 느리다. 이 친구는 다른 곳에서도 반응이 조금 느릴 것 같다. 또 어떤 아이는 흥이 넘친다. 음악에, 분위기에, 무대에 심취한 것 같다. 이 아이들 각각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Let’s sing together!”하며 노래가 끝나고 모두 바르게 서서 인사를 한다. 이렇게 인사를 할 때 또 눈물이 난다. 애들이 시간을 내어 연습한 시간이 상상이 되어서, 그 어린아이들의 수고가 고맙고 기특해서 눈물이 난다.     

 

오늘도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마음속 구석의 작은  하나가 햇빛 한 줄기에 비치는 듯한 기분, 마음속에 작은 생명력을 발견한 느낌이다.      




나도 어릴 때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시립어린이합창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오디션을 보러 갔다. 친구는 합격했지만 나는 떨어졌다. 그 뒤로 합창단에 들어가려고 다시 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합창 공연이 있으면 보러 갔다. 합창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좋았다.      


초등학생 딸아이가 학교 합창단에 들어갔다. 학교 합창단은 매주 2~3번씩 일찍 등교해서 합창 연습을 하고 가끔씩은 큰 무대나 대회에도 나간다. 지난 9월에도 합창대회가 있어서 응원을 갔다가 또 눈물을 닦아가며 노래를 들었다. 꺽꺽 소리를 낼 뻔도 했지만 꾹 참았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웨이드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릴 때 듣던 동요가 문득 생각난다.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 찬 것은

집집마다 어린 해가 자라고 있어서다.

그 해가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적어도 나에게는 진실이다.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어린이들의 노래가 있어서인 것 같다. 이 세상의 노래하는 어린이들에게 감사하다.




+

이 글을 딸에게 보여줬더니

"아니, 그럼 엄마, 그날 우리 공연을 울면서 봤단 말이야?"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응~ 공연이 너무 감동적이더라."

그랬더니 우는 웨이드를 바라보던 나의 표정으로, 웃기다는 듯이

"엄마가 완전 웨이드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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