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아버지가 언니와 나에게 물으셨다. 언니는 대저택에 살겠다고 했다. 식구들마다 방이 하나씩 있고, 서재, 음악방, 손님방, 파티룸, 미술방, TV방이 다 따로 있는 아주 크고 멋진 집을 갖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언니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렇게 살면 청소는 어떻게 해?’라고 생각하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중에 20평 아파트에 살 거야. 청소하기 편하잖아. ”
아버지에게서 실망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꿈을 크게 가져야 노력을 많이 하고 큰 사람이 될 텐데, 청소하기 귀찮아서 20평 아파트에 살겠다고 하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성문 영어책에는 말이야,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이 있단다. 소년이여, 꿈을 크게 가져라! 너도 꿈을 크게 가지면 좋겠다.”
아버지가 꿈을 크게 꾸라고 말씀하셨지만 나의 본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국무총리가 주는 미술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게 큰 상을 우리 반 친구가 받았다고? 우와...! 나는 그 친구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그날 어머니에게
“엄마! 우리 반 00가 국무총리가 주는 상을 받았어요. 정말 대단하죠?”라고 했다.
어머니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노려보더니
“너는 왜 그 상을 받을 생각을 안 하니?”라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내가 받을 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전혀 속상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고 속상해하시는 것 같았다.
중학교 때에는 중간. 기말고사 외에도 고입을 위한 모의고사를 매월 쳐서 시험이 정말 많았다. 나는 문제집을 풀다 틀리는 것이 나오면 나는 ‘오~! 틀린 문제 발견!! 이거 시험에 나오면 안 틀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시험을 칠 때에는 ‘자~ 나의 평소 실력을 테스트해 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시험을 준비한다고 밤을 새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 과목 만점이나 전교 1등은 하지 못했다. 나는 전 과목 ‘수’만 받으면 만족했다.
부모님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전교 1등도 해 볼 텐데...”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성적이 떨어져서 속상한 마음을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달래곤 했는데, 나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취미를 가진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도 같이 올라왔다. 학교는 다르지만 자주 만났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친구와 나의 ‘만족’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욕조만큼 큰 그릇을 가진 아이였다. 욕조를 노력으로 가득 채우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그릇을 채우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대학생 때 그 친구는 문과였지만 이과 과외까지 커버하기 위해 수 2를 공부했다. 그리고 과외 5개를 하면서 학교 장학금을 받았고, 플루트 레슨을 받으며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도 했다. 체력 관리를 위해서 매일 운동장을 10바퀴씩 달렸고, 토익도 만점을 위해 공부하면서 950점을 거뜬히 받았다. 이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해 잠은 하루에 2~3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
그녀와 달리 나는 수업 후 데미안을 읽으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이 한 마디가 너무 좋아서 그날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브라우니언 모션’에서 불확실함에 대한 수학적 힌트를 발견했다는 수업 내용에 감탄하며 행복했다.
바이올린 교재 스즈키 5권의 한 페이지를 반복해서 연습해 보다가 잘 안되던 포지션 이동이 잘 되면 그날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나는 정말 사소한 일에 만족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성취를 보니,내가 너무 볼품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를 따라 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녀처럼 여러 가지를 다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voca 22000을 사다가 한 달 만에 무작정 외워보기로 했다. 정석, 토익책, 한자 급수 책도 꺼냈다. 이 모든 것을 한 달 안에 완벽히 마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우선순위도 없었고, 서로 관련도 없는 것들을 완벽히 마치겠다는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나는 계획에 대한 반성, 수정은 하지 않은 채 ‘노오오력’이 부족한 내 정신머리를 탓하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그때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려는 생각을 못한 내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나는나 자신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채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스로를 괴롭힐수록 나는 더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점점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어차피 계획을 세우면 실망하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결국은 목표나 계획을 세우지 않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늘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지리산 자락에서 살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살다 보니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냥 자연의 흐름에 맞춰 그날을 살면 되었다. 3월 중순이 지나 비가 내리면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 시장에 모종이 많이 나오는 때가 되면 모종을 사다가 텃밭에 심으면 되었다. 꽃이 피면 꽃을 보고, 열매가 익으면 열매를 따다 먹고 수제청을 담으면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아이들과 계절 속에 살았다. 그리고 심심한 시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음악을 연주해 주고, 아이들과 그림을 그렸다. 책을 읽어주다 보니 내 책이 읽고 싶어 졌고, 책을 읽다 보니 기록해보고 싶었고, 독서록을 쓰다 보니 내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지금 나는 목표를 세우지 않고 계획하지 않고 힘을 빼고 마음을 따라가며 살고 있다. 자신을 채찍질하기보다는 격려해 가며 작은 것들을 사부작 사부작 하고 있다. 내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답게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아버지의 생일에 아버지를 만났다.
“아빠! 나는 내가 간장종지 같은 사람 같아.”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뜬금없이 간장종지라니.
“아빠. 내 마음은 간장종지처럼 작아서 금방 기쁨으로 가득 차요.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음악을 듣거나 요리를 하거나... 뭐 사소한 일로도 금방 기뻐져요. 기쁨이 넘쳐요. 그래서 이 기쁜 마음으로 뭔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간장종지 같은 사람이라도 자주 기쁘고, 기쁜 마음으로 뭔가를 계속해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큰 그릇을 가진 사람과 비슷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