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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May 23. 2022

산 사람들을 위한 장례식

27년 인생 첫 장례식

낯선 분위기와 이별

새벽 6시 알람과 함께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었다. 그리고선 지난밤 갑작스러운 친구 아버님의 부고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27살이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장례식장에 가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 큰 복인 지도 몰랐던 마냥 어린 27살이었다.


친구의 아버님은 암투병을 하고 계셨다. 2019년 겨울, 내가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한창 강아지의 구충제가 암을 치료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것을 다들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선 이미 강아지 구충제가 품귀현상이었고, 내가 사는 곳으로 여행 온 친구는 약국이 눈에 보일 때마다 들어가 강아지 구충제의 유무를 확인했었다. 그리고 결국엔 강아지 구충제를 구해선 한국에 돌아갔었다.


이따금, 뜬금없이 친구에게 전화가 오곤 했다. 그때마다 아버님의 병세가 악화되고 있다는  나중엔 물어보지 않아도   있었다.


아버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선 생각했다. 친구에게서 소식이 뜸했던 시간 동안 암이 아버님을 끊임없이 괴롭혔었구나, 지독하다 정말.


장례식을 가기 전까지 장례식 예절에 관해 수많은 검색을 했다. 가본 적이 없으니 혹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까 봐 수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1. 눈물을 흘리면 고인이 좋은 곳에 간다.

2.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리면 고인이 슬퍼서 떠나질 못한다.

(마음가는대로 진심을 다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어차피 눈물샘이 내 마음대로 되지도 않으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느새 장례식장에 도착을 했던 것 같다. 사실 그 몇 시간의 기억이 뚜렷하진 않다. 키도 크고 덩치도 산만한 내 친구가 눈시울이 빨개져서 나를 맞이해주었을 때부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기억이 날 수밖에 없었던 사실 하나는 아버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

“많이 놀랐지..”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절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걱정하는 것 밖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동시에 앞으로 우리들이 겪어야 할 수많은 이별들이 성큼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이번이 나의 첫 번째 이별은 아니었다.

2020년 여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내가 너무도 좋아하던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 아니 떠났다고 한다. 그때 우울증을 겪고 있던 나는, 타인의 아픔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과 긍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날 친동생처럼 생각했고, 또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힘든 줄 몰랐었다. 오랜만에 본 동료의 얼굴이 반쪽이었을 때도, 멋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머리를 빡빡 깎고 나타났을 때도 그저 조금 예민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경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신이 고인과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외의 정보는 가족분들이 동의하지 않아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유가족의 의견에 따라, 장례식은 유가족 외 그 누구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산사람은 살아야지라며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되뇌며 슬픔에 빠지지 않으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종종 꿈을 꾼다. 꿈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동료가 나타나서 펑펑 울며 내게 말한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그럼 나도 그를 붙잡고 엉엉 울면서 어디 있었냐고 묻다가 잠에서 깨기를 여러 번이다.


다시 2022년, 장례식 이후 돌아가는 기차에서

장례식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치러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가게 해 달라고 온 마음 다해 빌고, 그동안 미안했다고 가슴 치며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내가 사랑하던 동료의 장례에 참석할 수 있었으면, 지금 당신이 몸을 뉘어 쉬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만 있다면 너무 좋겠다.

내게 이별은 있었지만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은 없었고, 슬픔이 현실을 장악하는 것이 두려워 도망가는 동안 그렇게 그에 대한 미안함이 내 마음 한편에 굳건히 자리 잡은 것 같다.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 몇 년의 인생 경험이 더 생기면 그때는 방법을 알 수도 있겠지. 이 순간에도 힘든 이별을 겪어내고 있는 모두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고 작지만 진심 어린 위로를 보내주고 싶다.


이렇게 다시 한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기를 또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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