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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젠 Jun 26. 2024

창작의 공간, 화가의 작업실

글로 배우는 그림 그리기


커다란 캔버스가 벽에 세워져 있고 작품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방, 

벽과 바닥엔 물감이 여기저기 묻어 있으며 이젤 주변에 화가가 주로 사용하는 도구가 늘어져 있는 방.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보던 화가의 작업실은 창작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거장의 작업 모습 따라해보기

2023년 9월 6일, 엄마와 라울 뒤피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회 외부에 자그마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라울 뒤피의 작품이 크게 인쇄되어 있는 공간 안에 대표작 한점이 나무 이젤 위에 놓여있고, 의자에 앉아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찍을 수 있게 세팅된 포토존이었다. 나도 라울 뒤피처럼 해봐야지! 라는 로망을 실현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왕초보가 화가의 작업실을 가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작가님이 직접 운영하는 취미미술 클래스를 신청하는 것이다. 재료는 작업실에서 제공해주기 때문에 몸만 가면 된다! 전공이나 화풍, 재료에 따라 작업실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수 있다.


처음 가본 곳은 내방역의 서양화 전공 작가님 작업실이다. 

생애 최초 방문하는 화가의 작업실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빌라 1층, 작은 원룸 한가운데 수업용 테이블이 있었고, 영화처럼 커다란 캔버스가 벽 한켠에 여려 겹으로 세워져 있었다. 책장에는 미술 관련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수업 때문에 이젤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크릴과 수채화 재료들도 서랍에 가득 들어있었다. 또 다른 벽에는 엽서크기 종이에 그린 수강생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벽과 바닥에 물감 자국은 없었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시는 작가님 덕분에 이 공간이 아늑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날 그린 작품을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감상하면서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그리면서 어땠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은 힐링 그 자체였다. 집-회사-집-회사로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색을 칠하며 활력을 주었다.


두번째 공간은 오일파스텔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실이다. 

집에서 한시간 반 걸리는 위치에 있는 상가 2층 공방이었다. 꽃과 하늘, 귀여운 동물 등 자연을 그리는 작가님이었는데, 공방 분위기는 작은 정원 같았다.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통창 아래 아기자기한 꽃들이 자라는 화분이 있었다. 벽에는 화사한 색감의 꽃과 하늘, 들판을 그린 작품이 걸려있고, 귀여운 강아지 초상화도 있었다.

직접 수강생에게 커피와 차를 타주시면서 꺄르르 웃는 작가님에게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밝고 따뜻한 자연을 닮은 공방과 작가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 원데이클래스 이후 두 번의 정규 수업까지 들었다. 위치가 멀어서 오가는 길이 힘들었지만, 2시간 동안 재미있게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매주 수업시간이 기다려졌다. 해를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처럼, 공방의 따스한 기운을 담뿍 받으며 즐겁게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서서히 오일파스텔의 매력에 빠져들어버렸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올해 또 수강신청을 하고 매주 월 1회 하루 4시간 짜리 수업을 듣고 있다!


세번째 공간은 펜과 마카드로잉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실이다. 

신논현역 근처 오피스텔에 위치한 작업실은 작가님 그림처럼 깔끔했다. 작업실 한쪽에 있는 원목 서랍에는 수십가지 색상의 마카가 꽂혀있고 벽에는 캔버스작품이 가득 걸려있었다. 작업실 한 켠에는 엽서와 마스킹테이프 같은 굿즈도 전시되어 있었다. 펜으로 테두리를 긋고 마카로 내부를 색칠하는 방식으로 그려진 작품들은 모두 깔끔 그 자체였다. 

수업시간, 선이 삐뚤빼뚤해도, 마카를 칠하다가 선 밖으로 조금 나가도 “괜찮아요~ 틀린 게 아니에요~ 걱정말고 편하게 하세요~”라고 하시는 유쾌한 작가님 덕분에 과감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작업실에서 펜꽂이함 6개에 가득 꽂혀있는 마카를 어떤 색이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기초 과정을 끝낸 뒤에 계속 해보고 싶을 때 재료를 구매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다. 

하루 한 작품이 딱 완성되기 때문에 숙제도 없다. 작가님과 그림을 닮은 깔끔함이 커리큘럼에도 녹아있었다.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해보니, 작은 공간이라도 본인의 성향과 화풍, 재료에 따라 작업실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흥미로웠다. 화가의 관심사와 삶이 그림과 공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작업실을 갖게 된다면 나는 이 공간을 어떻게 꾸밀까? 

지금 내 방에도 그림 그리기를 위한 책상이 마련되어 있고, 이젤도 설치해두었다. 벽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이 붙어있다. 디지털드로잉을 위한 도구도 준비되어 있다. 다만 오일파스텔, 색연필, 마카, 연필 등 관심있는 재료가 많아서 책상 옆 서랍은 뒤죽박죽이다. 나만의 그림을 찾아가면서 차분히 정리를 해보아야겠다.


작가님들과 교류하는 것도 재미있고, 나이가 비슷한 작가님들을 만나면 나도 저렇게 성장하고 싶다는 자극을 받기도 한다. 

초보화가로서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고 싶은 사람들이 쉽게 그림을 접할 수 있도록 내 작업실을 만들어 원데이클래스를 열어보고 싶다. 더 나아가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안고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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