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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Nov 22. 2022

가을 소풍

소풍을 다녀왔다. 사십몇 년이란 세월을 거슬러 초등학교 6학년으로 돌아가 가평에 있는 남이섬과 호명호수를 다녀왔다. 어느새 흰머리가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된 열아홉 명과의 소풍은 화려한 듯하면서도 외로운 만추의 풍경을 닮은 것이었다. 거지반 잎새들을 떨구고 서 있는 추운 나무들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체온은 나누지 못하는 것처럼 종일 함께 있으면서도 조금 외롭고 쓸쓸하였다.     


초등학교 동창회 소풍은 5, 6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코로나로 인해 두 해를 거르고 3년 만에 재개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더 화급한 무언가와 겹쳐 줄곧 참석을 못 하다가 퇴직을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대학 2학년 때이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한 학과 MT 이후 처음으로 다시 찾은 남이섬은 쇳가루를 당기는 커다란 자석처럼 엄청난 인파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기껏해야 2, 30명쯤 태우고 하루 십여 차례 힘겹게 오가던 통통배는 그 열 배 스무 배 넘는 사람들을 태우고도 끄떡없는 멋진 2층짜리 여객선으로 바뀌어 몇 분마다 새로운 인파를 가득가득 쏟아 내고 있었다.      


손타지 않은 자연과 들뜬 청춘들의 왁자한 함성밖에 달리 기억나는 것이 없는 섬 안에는 여기저기 늘어선 건물들과 상점들과 구조물들이 인파에 싸여있었고, 배에서 내려 섬으로 들어가는 대문 격인 ‘남이섬 나들문’에 첫발을 들이기도 전에 풍겨온 커피 향은 원래부터 이 섬의 향기라도 되는 양 낙엽의 냄새도 강물의 냄새도 다 삼켜버리고 있었다.      


그 커피 냄새와 끝 모를 인파에 파묻힌 강기슭 나들문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이자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신비의 문이 아니라 멋 부려 쓴 푸른색 글씨의 편액을 매단 보통의 대문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나마 얼마쯤 남아있는 색색의 단풍과 높고 푸른 하늘과 그 하늘을 가득 채운 햇살과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변한 것 없어 보이는 흐르는 강물이 있어 번잡한 중에도 한가할 수 있었다.     


소풍을 함께 간 열아홉 명 중 가끔 전화통화라도 하는 동창은 두세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경조사나 동문 행사에서 스치듯 보던 친구들이었다. 서넛은 아예 이름도 얼굴도 낯설었다.      


그동안 한 번도 참석을 못 한 게 미안하기도 하고, 옛 친구들과 밀린 이야기도 나누면서 시간 여행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것인데, 막상 참가한 친구들의 면면을 대하고 보니 낯선 무리 속에 들어온 이방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연을 맺은 지 오래되었으되 격조함 역시 길었던 탓인지 오고 가는 버스 안에서도, 남이섬과 호명호수를 돌면서도 시종 대화는 쉬 끊어지고 맥락도 없었다. 내 살아온 이야기를 상세히 하는 것도 뜬금없는 것 같고, 지난 세월 어떻게 살아왔냐고 묻는 것 또한 불쑥 남의 방문을 두드리는 것만 같아 조심스러웠다.

    

세월을 거슬러 격의 없이 어울리고 유치해지고 싶은 소풍이었지만, 그저 제각기 간직하고 있던 어릴 적 기억들을 소환해 짝을 맞춰보면서 우리가 인생의 한때를 함께 한 사이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오는 게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더 자주 오고, 외롭다는 건 혼자라는 뜻이 아니라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의 갈증 같은 것’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 하루였다.      


아마도 너무 오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채우지 못한 마음에는 쓸쓸한 가을바람이 불어왔고, 그 바람에 나는 잠시 잎새를 떨군 나무들처럼 외로워졌던 것일 것이다.     


내가 잊고 있었던 외로움을 만난 날, 생각해보면 조금 외롭기는 했지만 제법 괜찮은 하루였다. 외롭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살아왔고, 그래서 외로우면서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조차 모른 채 살아온 것 같은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비로소 나의 외로움을 만났고 나도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겉으로 순했지만, 속에서는 태풍이 불던 격동의 사춘기(思春期)가 지나간 지 40년쯤 지났다. 어쩌면 오늘은 40여 년 만에 찾아온 오춘기(五春期)의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 오춘기가 시작된 첫 번째 날일 수도 있겠다.      


사춘기 그 강렬한 갈망의 뒤에 처음 느껴본 외로움이 있었듯, 오늘 외로움의 앞에는 어떤 큰 갈망이 꿈틀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이 그 갈망을 깨우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외로웠던 오늘은 소중한 날이었다.


진작 왔어야 할 겨울이 뜸을 들이는 동안 인디언 서머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춘기 그 뜨거웠던 갈망으로 40년을 살았듯 오늘 비로소 찾은 외로움에 가려진 갈망을 깨워 인디언 서머처럼 찬란한 오춘기의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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